[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아파트 층간 소음문제로 이웃들 사이에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석양이 내리쬐는 저녁에 다정히 맥주 한 잔 해야 할 이웃들이 주먹과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위층과 아래층의 입씨름이 '멱살 드잡이'로 나아가고 드잡이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살인까지 일어나는 비극적 현실에 놓여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주민 2명을 살해한 사건이 지난 9일 발생했다. 9일 오후 5시40분쯤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 김 모(45)씨가 윗집 주인을 찾아온 또 다른 김 모(33) 씨 등 2명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났다. 흉기에 찔린 김씨 등 2명은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안타깝게도 숨졌다.
◆층간 소음 갈등, 위층과 아래층 문제 아니다=층간 소음 문제가 늘어나고 갈등이 깊어지면서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층에서 밤마다 뛰어 다니는 철없는 아이들 때문일까. 이상스럽고 괴기스럽게 새벽마다 세탁기를 돌리고 책상을 질질 끌고 다니는 개념 없는 어른들 때문일까.
그런 아이와 어른들에게 상식적이지 않고 배려 없는 잘못은 우선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 원인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애초부터 아파트 건물이 잘못 지어진 탓이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에, 처음 가져보는 내 집으로 이사 온 바로 그날. 위층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는 소리.
층간 소음 문제에 대한 신고를 받는 환경관리공단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 소음의 주요 내용을 보면 ▲아이들 뛰는 소리(71%) ▲가구 끄는 소리 ▲가전제품 소음 등이 주를 이뤄다. 대부분 아이들의 '쿵쿵' 뛰는 소리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현재 층간소음 피해 인정 기준은 낮에는 40㏈(데시벨) 이상, 밤에는 35㏈ 이상이다. 40㏈은 성인이 강하게 걸을 때 아래층에 전해지는 소음 정도를 말한다.
◆관리사무소와 건설업체에 따져야=층간 소음문제가 일어나면 아래층에 있는 사람이 위층으로 달려가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음으로 짜증이 나 있는 상황에서 위, 아래층 사람이 만나면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싸움이 일어나고, 폭력이 발생하고, 살인이라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진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설계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위, 아래층에 충분한 두께로 시공하지 않고 원가를 줄이기 위해 부실 시공한 시공사와 건설업체, 그리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감리업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동주택의 법정 바닥 기준 강화와 바닥충격음 측정 방식의 개선을 도입한 새 주택건설기준이 곧 공포될 예정에 있다. 그러나 2004년 이전에 만들어진 아파트는 층간 바닥두께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층간 소음문제가 업체들의 부실공사에도 불구하고 위, 아래층 이웃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 때문에 애꿎은 위, 아래 이웃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2004년 이전 아파트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 나서 중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4년 이후 만들어진 아파트의 경우 두 가족이 뭉쳐 건설 회사를 상대로 부실 공사에 대한 법적 소송을 전개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두 이웃의 이야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비슷한 사례까지 합쳐지면서 층간 소음 문제는 '개인 vs 개인'이 풀어야 하는 감정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 입주민 전체 vs 건설업체·시공사·감리업체'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향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겠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상, 또 하나의 공동체로 묶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서로 감정을 앞세우기 이전에 이성적 판단을 통해 '위풍당당'하게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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