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오오, 눈부신 고립/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중에서
■ 이 시는 사랑에 관한 시가 아니다.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에 마음이 팔려, 나도 폭설 즈음이면 늘 이 시의 무죄한 도피 욕망에 심정적으로 동행하곤 했다. 이 시는 오직 한계령이라는 그 장소에 바치는 열렬한 헌사이다. 찬 계곡을 품은 산굽이(寒溪嶺)의 음감이 생의 한계를 느끼는 나이(限界齡)와, 우연히도 같은지라 묘한 감회를 돋운 그 나머지이기도 하리라. 문정희는, 운명이 통째로 발 묶인 그 숨막히는 고립 속에서 비로소 인간과 인연의 체인에서 비켜나온 통렬한 쾌감을 느끼는데 시를 집중시키고 있다. 한계는 그 한계를 기꺼이 선택하여 도주한 자에게는 무한한 자유에 가깝다. 눈에 고립되어 얼어죽을 사랑을 포옹하는 꿈도, 버릴 순 없는 것이지만, 저 한계의 역설에 미쳐, 탈옥수처럼 내려앉은 시간의 적요에 들어앉고 싶은 저 희망도 사무치게 아름답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