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이라는 말 속엔/아픈 사람 하나 들어있다//참 따뜻한 말//죽, 이라는 말 속엔/아픈 사람보다 더 아픈/죽 만드는 또 한 사람 들어 있다
문창갑의 '죽'
■ 죽(粥)이란 한자를 들여다보면 쌀을 넣고 오돌도돌한 체로 걸러내는 모양새이다. 죽을 만드는 과정을 문자 하나에 동영상처럼 그려 넣었다. 그런데 '죽'이라는 소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왜 하필 죽일까. 쌀은 살이 되는 것이고 살아나는 먹거리인데, 죽은 오히려 죽이는 먹거리가 아니던가. 죽음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소리는, 죽이 사용되는 용처(用處)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문창갑이 발견한 것처럼 그 속에 아픈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다. 죽을 만큼 끙끙거리는 마음이 들어있다. 영조의 딸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병으로 죽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곡기를 끊었다.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이 그녀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옹주여, 숟가락을 들라." 미음 죽 위에 놓인 그 숟가락을, 옹주는 마지못해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그 뒤 딸은 죽음에 이르렀고 조선왕실에서 유일한 열녀가 되었다. 이분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머니이기도 하다. 죽, 이라는 말 속엔 아픈 사람보다 더 아픈, 죽 권하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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