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나석윤 기자] 노숙인 자활 공간이나 시설을 두고 서울시와 일부 구청이 서로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거처를 마련하자는 쪽과 '주민기피시설'을 둘 수 없다는 입장으로 갈려 충돌하고 있다.
최근 '넝마공동체'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넝마공동체는 지난 1986년 윤팔병(남 71)씨가 재활용품 수거와 판매를 통해 노숙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만든 공동체다. 이들은 개발 이전부터 강남을 터전으로 삼아 26년간을 개포동 영동 5교에서 생활해 왔지만 지난 10월 말께 이곳 하부정비로 쫓겨났다. 더욱이 최근 한달동안 임시 거주처로 대치동 탄천운동장에서 지내왔지만 이마저도 다시 쫓겨나 갈 곳을 잃게 됐다. 지난달 28일 새벽 강남구청이 행정대집행 명목으로 기습적인 철거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현재 넝마공동체 주민은 20여명으로, 이들은 그날 밤 탄천운동장 인근 찜질방에서 숙식했다.
넝마공동체 주민들은 지난 6일 오후 서울시 신청사 1층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현재 잠 잘 곳과 일터가 유린당한 상황에서, 강남구청과 용역직원들에 의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라며 "구청의 인권유린과 빈민 생존권 말살 행위에 대한 진상을 조사해야 하며, 최소한 이번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시에 요구했다. 이인례(71, 여)씨는 "30년 동안이나 살아온 곳을 어떻게 사람들 동원해서 그렇게 철거할 수 있는지 화가 난다"면서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원상복구를 시키든 대안을 내놓든 해야 한다. 밤에 자고 있는데 3번씩이나 들이 닥쳐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어디 있나"고 호소했다.
이에대해 강남구청은 "영동 5교 도로무단점용 변상금 부과 조치와 탄천운동장 행정대집행은 구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불법행위도 용납하지 않고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최근 발족한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이 사건을 접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 사회혁신기획관 인권담당관 관계자는 "피해를 봤다는 넝마공동체 주민들 진술은 이미 듣고 있으며, 다음주 내로 강남구청 공무원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며 "당장 거리를 전전하는 주민들에게 단기 숙식 문제를 해결토록 대책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건태 서울시 자활지원과 팀장은 "단체로 쉼터에 입소하게 되면 기존 쉼터이용 노숙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고 이용한다면, 적절히 배치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시설 문제로 시와 구청이 갈등을 겪었던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7월 서울시와 용산구는 노숙인 쉼터 이전과 관련해 충돌을 빚은 바 있다. 기존 쉼터 자리가 서계동에 있는 사유지라서, 임대인이 개인적 사정으로 건축물 용도를 바꾸려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는 개인 땅이 아닌 시유지 자리에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리모델링 공사가 좌초되고, 기존 쉼터에 있던 노숙인 40여명은 다른 구인 영등포구 노숙인 쉼터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용산구와 서울시 사이 조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함께 다른 부지를 물색해보기는 커녕, 쉼터 관계자들이 이번 문제에 대한 구청장 면담을 3~4차례 요청했지만 구청 측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서울시내 노숙인 시설 예산은 모두 시가 집행한다. 하지만 지도ㆍ감독은 시와 구청이 함께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의 민원 등으로 이들 구청은 노숙인 시설을 기피하는 형편이어서 시와 구청 간의 마찰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맹추위가 연일 지속되면서 거리에 있던 노숙인들이 보호시설 안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문을 연 서울역 인근 응급구호방에서 하루평균 100~150명의 노숙인들이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영등포역 노숙인들 70~80명도 인근 쉼터로 들어갔다.
오진희 기자 valere@
나석윤 기자 seokyun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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