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재범 기자]당초 영화 ‘26년’은 전직 최고 권력자에 대한 단죄를 그리고 있어 2008년부터 수차례 제작이 무산된 바 있다. 제작사 측은 ‘보이지 않는 압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부 투자사들이 제작 확정 뒤 석연치 않은 이유로 투자를 회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고, 6일 현재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중이다. 하루 평균 관객 동원도 10만 명 수준이다.
개봉 당시 영화의 민감함을 이유로 대기업 계열의 배급사들이 배급을 꺼렸다는 말도 나왔다. 결국 신생 배급사가 ‘26년’을 떠안았다. 문제는 흥행세가 유지되자 스크린 점령에 나서면서 군소 영화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날의 학살자를 단죄하는 작품이 오히려 현실 속 군소영화들에게 '스크린 학살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과 ‘26년’ 개봉일인 29일의 차이를 보면 확연하다. 28일 기준으로 영화 ‘남영동1985’의 스크린 수는 293개, 상영횟수는 1555회였다. 하지만 ‘26년’ 개봉일인 29일엔 206개의 스크린에 526회 상영횟수로 빠져버렸다. ‘퐁당퐁당’(교차상영)으로 전환된 것이다. ‘철가방 우수씨’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28일까지 106개 스크린에서 421회 상영으로 박스오피스 7위에 올라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37개 스크린에 80회 상영으로 사실상 종영됐다.
두 영화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주인공인 ‘광해, 왕이 된 남자’나 ‘늑대소년’과 함께 모두 상영 중이었다. 박스오피스 순위에서도 비교적 선전했다. 하지만 ‘26년’은 화제성 하나만으로 '남영동1985'와 '철가방 우수씨'를 모두 종영 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6일 현재 '26년'은 594개 스크린에서 하루 2327회 상영 중이다.
제작사 측은 “흥행보단 더 많은 사람이 26년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말 흥행에는 관심이 없고 많은 관람만 원하는 것인지. 그 안에서 죽어가는 작은 영화들의 또 다른 통곡은 들리지 않는지 궁금하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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