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두달 만에 또 내려잡았다. 지난 9월 4.1%에서 3.4%로 하향조정하더니 엊그제 3.0%로 더 낮추었다. 그러면서 재정지출 확대와 금리 인하를 정부와 한국은행에 촉구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이미 국내외의 다른 대다수 경제예측기관들이 3% 안팎으로 낮춘 뒤여서 이번 KDI의 하향 조정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ㆍ금융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은 눈길을 잡아 끈다.
그동안 KDI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균형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재정정책 노선을 지지하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한은에 대해서는 물가상승 기대심리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필요성까지 거론했다. 적어도 두 달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태도를 180도로 바꿔 재정지출 확대와 금리 인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 사이에 국내외 경제여건에 예상치 못했던 특별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KDI의 기존 경제전망에 낙관의 오류가 개입됐던 것이거나, 예기치 못한 경기냉각 급가속으로 긴급처방이 필요하게 됐다는 얘기다.
국책 연구기관인 KDI의 경기전망 수정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현 정부 경제팀의 임기말 거시경제정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박 장관이 현 정부 임기 내 균형재정 달성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재정의 경기대응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또 이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연착륙하지 못하고 KDI 예측모델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급락해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갇힐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은 KDI의 올해와 내년 상반기 전망에서 드러난다. KDI는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을 2.5%에서 2.2%로 하향 조정하는 동시에 내년 성장률도 상반기에는 그대로 2.2%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은 차기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의 출범 첫해다. 새 정부는 유럽 재정위기로 증폭된 세계적인 불황을 극복하는 동시에 경제민주화, 복지, 미래 성장기반 확보 등 풀어내야 할 경제과제가 많다. 그런데 현 정부의 실패한 임기말 거시경제정책이 새 정부의 첫걸음을 방해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석달 남은 잔여임기 동안 성장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이 박재완 경제팀의 마지막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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