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독일은 3396t의 금을 갖고 있는 세계 2위 금 보유국이다. 그러나 보유량의 절반이 조금 안 되는 1536t은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이하 연준) 지하 5층 금고에 보관해놓고 있다. 지하 25m, 해수면보다 15m 낮은 곳이다.
뉴욕 연준은행 지하 금고에 맡겨놓은 금은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에 보관돼 있는 금 1036t보다 많다. 나머지 450t과 374t은 각각 영국 중앙은행, 프랑스 중앙은행에 맡겨두고 있다.
뉴욕 연준에 맡긴 금이 워낙 많다 보다보니 지난 수십년 간 독일에서는 괴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뉴욕 연준 지하 금고에 맡겨둔 금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됐다는 것이다. 미국이 독일의 금을 다른 곳에 빌려줬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한 술 더 떠 미국으로부터 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소문도 있다. 냉전시대 독일이 미국에 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미국은 주독 미군 철수 운운하며 반환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 루머는 1958~1969년 분데스방크 총재를 역임한 카를 블레싱이 미국에 금 포기 각서까지 제출했다는 루머로까지 확대된다.
1971년 블레싱 총재가 슈피겔과 마지막으로 했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상당한 신빙성도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블레싱은 "뉴욕에 보관된 금이 걱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달러를 금으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괴소문과 함께 독일에서는 뉴욕에 보관돼 있다는 금을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최근 달러나 유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키지면서 뉴욕 연준 금을 둘러싼 논란은 더 가열되고 있다.
기독사회당(CSU)의 페테르 가우바일러 의원은 분데스방크가 금을 제대로 확인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인물이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올해 여름 가우바일러 의원을 분데스방크 지하 금고로 데려가 금이 제대로 보관돼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가우바일러 의원은 해외에 있는 금, 특히 뉴욕 지하에 보관된 금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우바일러 의원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자 최근 독일 연방회계국(FAO)은 비밀 보고서 한 건을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분데스방크의 금 관리 실태와 관련해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분데스방크가 좀더 나은 금 점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논란이 일자 분데스방크는 금을 되찾을 것이라며 앞으로 3년 동안 금 150t에 대해 점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게다가 뉴욕 연준은행에 맡겨둔 금의 개수와 무게도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확인할지 밝히지는 않았다.
뉴욕에 보관된 금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FAO 보고서에 따르면 FRB는 보안ㆍ관리 기밀 유지 차원에서 주인에게도 금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수십년 동안 분데스방크 관계자들은 뉴욕에 금이 제대로 보관돼 있는지 서면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독일 국민들이 발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분데스방크가 의회 예산위원회에서 해명해야 했을 정도다.
녹색당의 게르하르트 시크 의원은 "비상시 얼마나 많은 금을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민주당의 하인츠 페테르 하우스타인 의원은 "해외에 있는 금을 모두 본국으로 갖고 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식적으로 2007년 분데스방크 관계자들은 뉴욕 연준 지하 창고를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독일이 맡겨놓은 금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비공식적으로 지난해 5월 분데스방크 회계감사관들은 뉴욕 연준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들은 뉴욕 연준 지하 창고 9개 구역 가운데 독일의 금이 다량 보관된 한 구역을 확인했다. 당시 분데스방크 인사들은 일부를 빼내 무게까지 쟀다. 그러나 당시 방문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독일은 금본위제 시행 당시인 20세기 중반 '라인강의 기적'에 따른 엄청난 경상흑자로 많은 금을 쌓아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되자 산적한 금을 활용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은 금을 팔아 의료보험 비용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2002년에는 자유민주당이 금으로 자연재해에 대비한 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에른스트 벨트케 전 분데스방크 총재는 국립 교육펀드 재단 설립을 제안했다.
이런 요구는 번번이 묵살됐다. 최근에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금을 유로본드의 담보로 활용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분데스방크는 비상시 대응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금을 뉴욕에 그대로 두자는 입장이다. 유로가 붕괴될 경우 보유 금을 달러나 파운드로 쉽고 빠르게 교환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뉴욕 연준은 그나마 이따금 제한적이나마 보관 중인 금을 공개한다. 하지만 미 켄터기주 포트녹스 군기지의 지하 요새에 있는 금은 최근 수십년 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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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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