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스페인이 고 실업과 재정적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지표는 스페인이 하루빨리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스페인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스페인의 실업률은 25.02%로 6월 말 24.63%보다 상승했다. 이는 유로존(유로 사용 17개국) 최고치인 것은 물론 스페인에서도 1976년 이후 가장 높다.
페르난도 히메네스 라토레 재무부 차관은 “연간 실업률은 더 오를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고통스런 조정기에 있다”고 밝혔다.
실업률 상승은 10여년간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부문 기업들과 이들에 대출해준 많은 은행들이 망하면서 높아졌다. 또 201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재정적자를 맞추기 위해 스페인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는 등 긴축조치를 단행한 것도 영향을 줬다.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GDP의 9.4%였고 올해도 7.4%로 예상되는데 올해 6.3%에 맞추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공공부문과 유관 분야에서 일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마리아노 라호이 정부는 실업률이 내년에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2014년 실업률은 27%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상반되는 견해를 내놨다.
긴축의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실업에 이어 소득감소와 세금감소,성장률 하락을 낳고 있다.스페인 중앙은행은 지난 23일 3·4 국내총생산(GDP) 추정치가 전분기 대비 0.4%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5분기 연속 하락한 것이다.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각각 -1.7%와 -1.3%였다.
스페인 정부는 현지시간 30일 GDP와 소비자물가, 공공재정 등 통계치를 동시에 발표할 예정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 조사를 통해 -0.4%를 예상했다. 연간 성장률도 -1.5% 정도로 스페인 저축은행 연구기관인 스페인은행연구소(FUNCAS)는 내다보고 있다.
스페인중앙은행(BOS)는 “공공부문의 지출을 낮추려는 노력이 3·4분기에 경제를 위축시켰다”면서 “소비와 정부의 투자도 줄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앞날이다. 재정적자 목표를 맞추려면 성장을 통해 세수를 늘리거나 적자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긴축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끊이지 않아 스페인 정치권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조치를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장도 쉽지 않다. 3·4분기에 민간소비가 반짝 증가했는데 이는 9월 부가가치세 인상에 앞서 물건을 미리 사둔 결과였다. 부실대출 증가가 보여주듯 소비자 자금은 바닥나고 있어 10월에도 이들이 지갑을 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스페인 3대 은행 카시아방크의 부실대출 비율은 9월말 8.42%로 1년전(4.65%)에 비해 근 두배로 올라갔다.
금리를 낮추고 싶어도 물가 때문에 선택하기 어렵다. 소비자 물가는 9월에 3.5% 오른데 이어 10월에도 3.6%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경제운용에 필요한 자금마련도 쉽지 않다.우선,10년물 국채수익률이 5.64%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다시한번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을 꿔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전망이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스페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방정부인 안달루시아 등 5개 지방 정부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강등시켜 경제난은 가중되고 있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금을 빼고 있다.올들어 7월 말까지 비거주자(외국인)는 스페인 채권과 주식시장에서 총 957억 유로를 빼갔다.이는 1년전 219억 유로에 비하면 네 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모든 지표는 하루 빨리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반면 적절한 경제정책 수단은 고갈된 상태다.
그런데도 스페인은 ‘주권유지’라는 명분에 매달려 유럽안정기구(ESM)에 국채를 사달라고 요청하기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29일 마리오 몬티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ESM에 국채매입을 요청할 계획이 없으며 “편안하다고 생각하면 하겠다”고 단언했다.
1000억 유로 규모의 은행 구제금융에 이어 ESM이 국채를 사준다면 은행 정상화와 재정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스페인 경제는 갈수록 골병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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