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일의 경제읽기
부동산 장기 침체로 인한 하우스푸어 문제가 경제·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은행대출이 많다는 이유로 졸지에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이들에게 현 상황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수십 차례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하우스푸어는 가계부채와 연관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전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이 가시화되고 있는 요즈음, 위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확산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이 증폭되자 정치권과 부동산, 금융 전문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종 대책을 제안하고 있지만 여전히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하우스푸어 대책에 가장 적극적인 그룹은 대선을 코 앞에 둔 정치권이다.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인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300만명에 이르는 중산층의 표심을 거뜬히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들이 내놓은 대책은 방향성과 실효성이 없거나 매우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설익은 대책으로 시장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내놓은 ‘집걱정 덜기 종합대책’이 대표적 사례다.
박 후보는 하우스푸어를 줄이기 위해 주택지분 일부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에 매각해 빚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책은 집값이 추가로 하락하면 하우스푸어의 부채를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집 없는 세입자들에게 집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나눠 짊어지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우(愚)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는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금융권과 유주택자의 책임묻기에 급급하다. 현재의 하우스푸어 문제는 집으로 떼돈을 벌려는 투기꾼들의 잘못이기 때문에 혈세로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금융기관에서 만기를 연장해주고 변동금리를 장기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하우스푸어의 연착륙을 도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해법만을 제시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각종 대책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후재임대) 방식이다. 금융권에서는 최대 100조원대 규모의 보증자금을 공동출자해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이지만 이 역시 정확한 시기와 각 금융사간의 견해 차가 커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위기가 서서히 엄습해오고 있지만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논쟁만 펼쳐지고 있는 모양새가 답답하기만 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정부는 먼 산 불구경하듯 한다. 아직까지 하우스푸어 문제가 가계부실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핑계로 수수방관하면서 거드름만 피우고 있다. 도덕적 해이 문제를 거론하고, 참여 불가를 정당화하면서 뚜렷한 해결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우스푸어 문제는 결코 가볍게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주택시장이 자생적으로 회복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하우스푸어가 늘어난다는 것은 소비가 줄어들고 한국경제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금융권과의 협력을 통해 하우스푸어의 연착륙을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이고 강력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가계부채 폭탄이 터진다면 한국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의 경기침체를 맞이할 수 있다.
이코노믹 리뷰 홍성일 기자 h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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