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던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이 흔들리고 있다. 하우스푸어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가계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치닫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은 하우스푸어(House Poor)다. ‘집을 가진 가난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하우스푸어는 최근 한국경제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뇌관으로 불리고 있다. 하우스푸어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30~50대가 주축이다.
부동산 침체 장기화에 집값이 급락하면서 은행 대출 원리금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중산층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집값이 한참 올랐던 2006년과 2007년에 집을 구입했던 이들의 문제는 한국경제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지목받고 있다.
실제 지난 2006년과 2007년 2년 동안 집을 담보로 대출은 받은 규모는 44조7000억원 가량이다. 이들 대다수는 당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인 50%가량의 대출을 받았다. 5억원의 집이라면 2억5000만원을 빚을 떠안게 된 셈이다.
집값 하락 빠르고 깊숙하게 진행 될 듯
하우스푸어는 장기 침체에 따른 거래 부진과 내년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집값 하락 때문에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집값 하락은 금융위기 이후 지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그 속도가 더 가파르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2008년 6월의 86~95% 수준에 머물렀다. 국토부가 실거래가지수를 집계한 결과도 비슷하다. 지난 7월 서울의 집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보다 9% 하락한 91%에 머물렀다. 경기도와 인천 역시 91.2%, 86.6%로 하락폭이 컸다.
서초구 반포주공 아파트 106.26㎡의 아파트 가격은 2010년 12월 18억원에서 지난 7월 15억3000만원으로 3억3000만원이나 떨어졌다. 송파구 잠실주공 76.5㎡도 11억3000만원에서 8억8000만원으로 2억5000만원이 빠졌다.
신규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격은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08년 6월 대비 지난달 수도권의 아파트 분양가격은 65.9%에 그치면서 무려 34.1%나 떨어졌다. 유동성 위기를 느낀 건설사들이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분양가격을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거래량도 실종상태다. 주택 매매거래량은 작년 7월에 비해 22.1% 감소했다. 수도권이 20만3000건, 지방이 36만5000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3.1%, 21.5% 대폭 줄었다.
정부가 위기를 느끼고 금융당국에서 꺼렸던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일부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상화 조치는 이미 때가 늦었다고 지적했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택시장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앞으로 집값 하락속도는 더욱 가파르고 깊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을 다 쏟아낸 만큼 시장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정부가 DTI 완화 등을 꺼낸 것은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거의 마지막 카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은 소비심리가 최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함 실장은 이어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대선정국 등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이상 내년 상반기까지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과 사회 구조변화, 소득대비 높은 부동산 가격 등으로 인해 DTI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DTI규제 완화가 하락세에 접어든 집값을 잡아낼 수 없다는 의미다.
하우스푸어 경제활동 중심 30~50대 비중 높아
집값이 급락하면서 고통을 받는 하우스푸어의 대다수가 경제활동이 왕성한 30~50대로 확인됐다. 하우스푸어는 30~40대가 39%를 차지했고 50~60대가 25%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3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서울·경기·광역시 2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치다.
이 연구소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16.2%는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30%를 넘고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100%를 넘었다. 집을 팔아도 부채를 다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들 중 96%는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75%는 빚 때문에 지출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 줄여 내수 약화…펀더멘탈 “흔들 흔들”
올해 초 한국은행과 통계청,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조사 발표한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서도 하우스푸어의 가처분 소득 증가속도는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집을 보유한 가구의 가처분 소득은 지난 2010년 평균 3373만원보다 9.3% 늘어난 3688만원이었지만, 부채총액 증가는 5629만원에서 6353만원으로 12.9%를 기록해 증가속도가 1.4배에 달했다. 집을 갖고 있는 가구가 매달 내는 원리금도 수도권의 경우 79만원으로 전년 64만원에 비해 23.4%나 증가했다. 특히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250.2%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집값 하락이 부동산 담보가치 하락과 맞물려 제2의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계층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고 소비를 줄이면서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하우스푸어가 늘어난다는 것은 경제활동인구의 생산성과 소비를 떨어뜨려 경제 펀더멘탈을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산층의 심리적 공황상태도 문제다. 집값이 하락하는 등 장기간의 침체로 인해 하우스푸어를 포함한 중산층의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설문조사를 통해 내놓은 ‘중산층의 자신감이 무너지고 있다’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절반 스스로 저소득층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중산층의 심리적 위축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본 중산층 비중은 64%에 달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주관적 중산층은 46.4%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5년간 계층이 하락했다는 응답 비율이 19.1%에 달한다”며 “이들은 소득감소와 부채증가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어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이코노믹 리뷰 홍성일 기자 h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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