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낸 정치후원금은 지금…'금배지 쌈짓돈' 막장풍경
국회의원이 정치후원금을 자신의 쌈짓돈처럼 쓴다. 특히 국회 임기가 끝나기 직전 낭비가 심하다. 국회 임기말 정치후원금 사용 행태를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한다.
'양심불량' 18대 금배지…후원금 막판 털어먹기
① 화장품·사우나비·명절 선물비…"눈치보며 쓴게 이정도"
"그나마 눈치보며 쓴게 이 정도예요."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지난 5월까지 4년 동안 국회에서 비서관을 지낸 이모 씨(34)는 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정치자금) 지출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의원이 하루 한두차례 커피를 마시는 것부터 기초화장품 구입까지 사적인 씀씀이조차 '정치활동'으로 포장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정치후원금을 정치활동과 관련된 지출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남은 정치후원금을 낭비할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정치후원금 문화가 발달한 미국과 캐나다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정치인들의 정치후원 수입ㆍ지출 내역을 48시간 이내에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 후원자들은 지출 내역을 확인해 수상한 내역이 있으면 곧바로 신고할 수 있다. 캐나다는 각 항목별 지출한도가 정해져 종이 한 장 쓴 돈까지 따진다.
◆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은=국회의원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크게 정치후원금과 국회사무처의 지원경비로 나뉜다. 소속 정당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후원금은 연간 1억5000만원까지 모을 수 있다. 올해처럼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정치후원의 활성화를 위해 1인당 10만원까지는 세액공제할 수 있도록 조세특례제한법이 규정돼있다. 일정한 소득세 이상을 내는 국민은 10만원의 한도에서 정치후원금을 제공한 뒤 연말공제 때 환급받을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후원 문화가 자리잡지 못해 고액 후원이나 암암리에 이뤄지는 상임위 소관기관의 집단 소액 후원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이와 별도로 의원 한명당 국회사무처 지원경비가 연간 6000만원 수준에 이른다. 이 경비는 차량유지비, 유류비, 사무실 운영비, 공공요금, 정책개발비 등으로 나뉘어 지원된다. 이씨는 "정치자금의 경우 3개월간 민간에 공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적인 지출은 사무처 지원경비로 주로 활용한다"며 "이 돈은 항목만 지키면 사용처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디에 쓰였나=정치후원금 지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의원은 고급 승용차를 장기 렌트하고, 명절 때 주변에 돌리기 위한 선물비용으로 정치후원금을 사용했다. 일부 의원은 유권자들이 모아 준 정치자금으로 골프장에서 라운딩 후 식비로 쓰기도 했고, 호텔 사우나를 이용하기도 했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임기만료를 앞둔 국회의원의 씀씀이는 더욱 컸다. 상당수는 총선을 앞두고 선거자금(후보자 후원금 계좌)으로 억대에 이르는 돈을 지출했고, 연초 주민들에게 의정보고서를 지출하기 위해 2000~3000만원을 썼다. 하지만 임기 마지막 달인 5월에는 각종 채무반납과 보좌진 퇴직금, 간담회비 등으로 정치후원금 지출이 집중됐다. 국회의원 임기가 종료되면 후원회도 함께 해산돼 잔여 재산을 정당에 인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원들은 한결같이 "정치후원금을 최대한 아껴 쓰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치후원금에 대한 감시 또한 허술하다. 국회는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받지 않는다. 감사원은 대통령의 직속기관으로, 삼권분립 취지에 따라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국회에 대한 직무감찰은 내부기관인 국회 감사관실에서만 맡고 있지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조사했나=아시아경제신문은 지난 5월 "정치후원금이 남아서 빨리 써야한다"는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의 말을 듣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취재에 들어갔다. 의원실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한 2명의 전직 보좌진을 섭외해 복잡한 정치자금의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우선 선관위에 17대와 18대 임기만료 국회의원의 잔여재산 처리 내역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 자료를 통해 임기만료를 앞둔 의원들의 지출 내역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정치자금 및 후원금의 수입ㆍ지출보고서의 정보공개 청구를 요청했다. 1인당 수십~수백 쪽에 이르는 탓에 177명 모두의 자금 흐름을 분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4ㆍ11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의원과 불출마한 의원 그룹으로 나누어 정당별로 케이스를 선별해 분석했다.
18대 국회의원 중 19대 국회에 재입성한 의원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의원 후원회가 유지돼 6월 회계보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치후원금 수입ㆍ지출보고서는 내년 1월 중순부터 열람이 가능하다.
이민우 기자 mw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