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쌀 수입을 매년 늘리는 대신 관세를 높이는 방식으로 쌀 시장을 개방하자는 '쌀 관세화'가 올해도 무산될 조짐이다. 내년부터 쌀 관세화를 시행하려면 3개월 전인 9월 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하지만 농민단체와의 협의, 관계부처 협의 등 관련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이 남아도는 상황임에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쌀을 수입하게 될 처지에 놓였다.
쌀시장 전면 개방을 뜻하는 쌀 관세화 논의는 1995년 첫 시작됐다. 정부는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당시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1988~1990년 평균식량소비량(513만t)의 1~4%를 10년간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MMA) 제도를 선택했다.
10년이 흐른 2004년엔 재협상을 벌여 수입물량을 매년 2만347t씩 늘리는 조건으로 시장개방을 10년간 더 미룬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장개방 대신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은 2005년 22만5500t에서 올해는 36만8000t으로까지 늘었다. 관세화 직전 해인 2014년에는 이 물량이 40만8700t에 이를 전망이다. 보통 수입쌀은 밥쌀용으로 30%, 나머지 70%는 주정용 등 가공용으로 쓰인다.
문제는 국내 쌀 소비 감소로 생산량이 수요량을 훨씬 상회하는 상황인데 수입량까지 늘어 재정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부터 작년까지 수입된 쌀은 200만t이 넘고 추가 수입을 위해 들인 국가 예산만 3000억원에 이른다. 그래서 조기 관세화로 의무수입 물량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내년부터 관세화를 하면 이후 의무수입량은 올해 수준으로 고정돼 2015년 이후 매년 400억원에 이르는 쌀 재고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다. 또 최근 5년 사이 국제 쌀 값이 배 이상 올라 국내 쌀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도 조기 관세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같은 쌀 관세화를 추진하려면 정부와 농민단체 간 의견 수렴이 우선 이뤄져야 하고 정부의 입장도 정리(대외경제장관회의 및 국무회의 의결)돼야 한다. 그러나 WTO 통보 시점인 내달 말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이같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정부와 농민단체 간 논의는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쌀 관세화 여부는 대외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내년에 결론 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농민단체들과 협의는 물론, 자유무역협정(FTA)과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등 대내외적인 여건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쌀)관세화를 올해 결론짓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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