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직업이 사장님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33년 직장생활 중 23년을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30대에 외국계 금융회사 한국법인장을 맡았고, 40세에는 외국계 은행 대표로 영전했다.
외국계 금융회사 CEO 출신답게 황 사장의 영어실력은 유학파가 많은 업계에서도 출중하다. 외국회사들을 상대로 국내 CEO로서는 이례적으로 황 사장은 직접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실력에 "진짜 한국인 맞냐"는 외국기자의 질문을 받을 정도다.
1979년 씨티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황 사장은 국내파다.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중에 입사해 외국 경영대학원(MBA) 출신들과 함께 경쟁했다. 어릴때부터 영어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기라성같은 유학파들과 경쟁이 그를 더욱 영어고수로 만들었다.
영어실력이 밑바탕이 돼 외국계 CEO로 승승장구했지만 그의 CEO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89년 36세의 나이에 다이너스클럽카드 한국법인장부터 시작한 CEO 생활에서 처음부터 흑자였던 회사는 우리투자증권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모두 적자회사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흑자로 만들었다.
적자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기 우해 노조와도 많이 부딪혔다. 연간 70억원대의 적자를 내던 다이너스클럽카드에서는 당시 외국계 기업의 장점인 토요휴무제를 없앴다. 노조의 반발에는 "적자기업이 토요일에도 쉬면 안된다"고 설득한 끝에 구조조정 없이 3년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아테네은행 대표와 헝가리은행장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지점장 회의를 소집해도 지점장들이 노조위원장과 상의를 한 후에 참석여부를 결정하던 강성노조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7년여의 해외생활을 끝내고 국내에 복귀해 맡은 제일투자신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황 사장은 "CEO로 임명됐을 때 기뻤던 것은 우리투자증권에서가 처음"이라고 말한다. 유일하게 돈버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투자증권에서 꿈도 크다.
이미 정상권 회사를 맡았으니 업계를 선도하는 1등 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황 사장의 꿈이다. 그 꿈을 위해 3년간 달려왔고, 1등 회사라는 이미지도 상당부분 각인됐다. 주주들도 이 점을 인정, 황 사장에게 우리투자증권을 3년간 더 맡겼다.
▲ 1953년 경북 경주 출생
▲ 1972년 경희고 졸업
▲ 1980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 1979년 씨티은행 입사
▲ 1985년 미국 코넬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1989년 다이너스클럽카드 한국법인장
▲ 1993년 그리스아테네은행 공동대표
▲ 1996년 한화헝가리은행 행장
▲ 1999년 제일투자신탁증권 대표
▲ 2004년 PCA투자신탁운용 사장
▲ 2007년 PCA아시아지역 자산운용사업부문 부대표
▲ 2009년~현재 우리투자증권 사장
전필수 기자 philsu@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