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그림살롱 113회 | 도예가 송준규…‘休-기억속의 공간’연작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등 대형건축물…. 오늘날에도 생생함이 녹아있는 2천 년 전 로마시대 유기체들과의 만남 여행. 권력과 우정과 사랑이라는 욕망의 동질감을 안고 송준규의 작품은 유적지의 감동보다 ‘나’의 기억이 숨 쉬는 정겨운 통찰(洞察)의 세계로 이끈다.
두리번거렸지. 웅장하고 우아한 콜로세움(colosseum)을 찬탄하다 맹수와 사투를 벌였을 한 남자의 운명을 건 게임을. 정적이 얼마나 큰 울림인지 성근 잡풀들도 소리 없이 낮게 흔들렸었어. 그때 검붉게 피멍울 든 윤기 나던 근육의 기억을 담기 좋아서 풀잎 껍질이 딱딱한 것이라고, 톤(tone)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의아한 심정으로 돌아보려다 주춤했을 때 청금석(靑金石) 목걸이를 한 철없어 보이는 여인이 뭔가를 진지하게 말하며 스쳐 지나갔지.
유연하게 흔들리는 잎맥의 굴곡에 흐릿하게 보이는 문장들. 밀물과 썰물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주름은 빼곡하게 변방의 삶을 기록해야 할 공간이었다. 그제야 불현듯 깨달은 거야. 외로움을 견뎌낼 둥지를 위해, 오묘한 신비로움을 보존키 위해 제일 두꺼운 벽돌 몇 장쯤 품고 있던 나를. 세상엔 스스로 축조된 것은 없다고, 무릇 발자취라는 것도 어스름한 빛이라는 듯이 둥근 아치(arch) 속으로 석양빛이 관통하여 드리우면 뱃고동소리처럼 끈끈한 여운이 간신히 시간을 갈무리했었지.
원반에 머리를 맞아 흘린 소년의 피에서 피어난 연보라 히아신스(hyacinth)가 무채색 하얀 기억으로 피어오르던 밤. 한 마리 백마(白馬)가 죽음과 부활의 이정표에 서 있었다. 새벽녘 비바람 몰아치는 흙탕물 고개를 넘어 아우성치며 맨발로 뛰어오던 당신. 왜 하필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손을 놓지 못하고 비에 젖은 채로 조각상만 바라보았을까.
이윽고 나는 한 걸음을 뗀다. 아이가 첫발을 내딛을 때처럼 뒤뚱거리며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탄성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 하여 되묻는다. 진정 저 말처럼 영혼의 불멸을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일까.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동이 텄다. 성종(聖鐘)이 멀리 넓게 퍼진다. 만질 수 없지만 소리는, 너를 더욱 또렷한 모습으로 부른다. 신선한 공기에 기품 넘치는 리듬의 악보가 생생히 연주되었다. 길 위에 순례자의 고행 영상(映像)이 파노라마처럼 드리워진다. “사람이 다니라고 만든 길은 몸만 옮겨놓지 않는다.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간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가면 그 길은 길이 아니라 도(道)이다.”<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 고운기 지음>
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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