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사채관리회사제도'가 새로이 도입되면서 채권투자자 보호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아직은 주식이나 펀드상품과 같이 비교적 위험도가 높은 투자종목에 치우쳐 있음을 볼 수 있다. 외환위기사태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투자자 보호수준도 하루 빨리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5월 증권시장에 유입된 자금규모를 보면 주식과 수익증권에는 7000억원이 증가한 반면에 회사채는 무려 8조원이나 증가했다. 이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채권과 같은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여기에는 회사채의 금리수준이 예ㆍ적금보다는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채권이 비교적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돼 자금이 몰린다면 채권투자자를 위한 보호장치 또한 더욱 강화해야 한다. 더구나 경기가 둔화됨에 따라 기업부실로 인한 파급사태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호대책을 서둘러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사채수탁(인수)기관이 사채관리업무까지 수행하였다. 이에 사채권자보다는 사채를 발행한 회사의 이익을 보다 중시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문제가 되어 왔었다. 실제로 발행회사가 도산절차에 들어가도 개인투자자들은 진행상황은 물론이고 권리관계조차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사채권자로서의 권리를 상실하는 등과 같이 개인투자자는 주주나 채권금융기관에 비해 매우 불리한 대우를 받아왔다.
이에 정부에서는 지난 4월부터 사채수탁(인수)기관과 사채관리회사를 분리하여 사채권자와의 이해상충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또한 사채관리회사의 권한과 의무를 명확히 하는 등 사채권자 보호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사채관리회사'의 역할은 발행회사의 사채계약 이행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상환의무가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감시하는데 있다. 아울러 사채관리회사는 만약에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면 채권을 보전하고 사채에 관한 모든 법적권한을 행사하여 변제를 수령함으로써 사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한다. 또한 사채권자의 단체적 의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채권자집회를 통한 의사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정부는 이러한 사채관리회사의 공익성을 고려하여 증권회사와 은행 이외에도 이해상충의 우려가 없는 공공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증권금융에도 사채관리회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채관리회사가 단지 금융기관으로서의 영리추구 보다는 사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사채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채관리회사는 채권시장에 있어 보험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가올 경기후퇴에 대비하고, 투자자의 억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일본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사채관리회사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채관리회사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채권자에 대한 통지제도, 권리행사를 위한 공탁제도 등 관련 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
또한 사채발행회사에 대해서는 사채권자를 주주와 대등한 지위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인식의 변화도 수반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와 인식의 변화가 적시에 이루어진다면 발행회사와 사채권자가 상생하게 되고, 우리나라 채권시장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김경동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