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서 내린 확정 판결에 대해 연이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하면서 양측 간 보이지 않는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KSS해운, 교보생명보험 등이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1993년 개정돼 효력을 잃었음에도 대법원이 유효라고 보고 세금을 물린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효력 있다는 해석은 헌법에 위반됨을 확인한다"고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KSS해운과 교보생명은 조세감면규제법에 따라 주식 상장을 전제로 각각 1989년7월과 1989년4월에 자산재평가를 실시하고 세금을 감면받았다. 해당 법은 기업공개를 유도하기 위해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마련했다.
하지만 기간만료 시점인 2003년말까지 상장이 이뤄지지 않자 세무당국은 두 기업에 1989년 당시 감면받았던 법인세 등을 청구했다.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제23조에 따라 이를 자산재평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조세감면특별법은 1993년 전부 개정됐고 개정 법률에서는 이 사건 부칙조항과 관련한 아무런 규율을 하고 있지 않다"며 "법률이 전부 개정된 경우에는 부칙규정도 모두 소멸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법률 개정으로 없어진 조항을 적용받아 안 내도 될 세금을 냈다는 설명이다.
헌재는 "동일한 심판 대상에 조항에 대해 이미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이 있었고 이 사건에서 달리 판단할 사정이 없다"며 "같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반복하는 대신 청구인의 이익을 위해 위헌임을 확인하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앞서 올 5월31일에도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8년 GS칼텍스가 낸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GS칼텍스는 지난달에 법인세등부과처분취소소송 재심을 서울고법에 청구했지만 아직 결론을 짓지 못했다.
소송을 낸 GS칼텍스는 이미 가산세를 피하기 위해 700억원대 세금을 전액 납부한 상태로 대법원이 재심을 기각할 경우 헌재가 이를 다시 취소하는 등 대법원과 헌재의 반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헌재와 대법원의 신경전을 의식한 듯 이번달 10일 임기만료로 물러난 김능환 전 대법관은 퇴임식에서 작심하고 헌재를 항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김 전 대법관은 "헌법재판소법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다"며 "법원이 최종적으로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면 그에 따라 법적 분쟁이 종결돼야 한다"고 강도 높게 발언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에 가타부타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GS칼텍스의 재심 청구사건에 대해서는 곧 대법원의 결정을 밝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헌재의 위헌결정은 해당 법률이 삭제되는 등 귀속력이 따르지만 한정위헌의 결정에 대해서는 귀속력이 없다고 대법원에서는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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