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대법관 돌려막기', 대법원 문 연 이래 없어서 빌려쓰는 경우는 처음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국회의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지연으로 대법원 파행적으로 운영이 현실화됐다. 대법관 돌려막기는 물론 우리나라 최고 재판부인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기한 연기되는 등 국민의 ‘권리구제’가 위기를 맞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26일부터 대법원 소부 1부 선고에 2부 소속 양창수 대법관이 참여해 재판을 진행한다. 법원조직법상 대법관 3명 이상의 참석이 필요한 소부 선고에 절대 인원이 부족한 데 따른 임시방편이다. 김능환·안대희 두 대법관이 퇴임한 소부 1부는 전체 4명 중 절반이 공석으로 선고가 불가능해졌다.
헌법 공표와 더불어 1948년 대법원이 문을 연 이래 대법관이 ‘없어서 빌려쓰는’ 경우는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앞서 2008년 휴가 중인 대법관을 대신해 다른 대법관이 재판을 대신한 전례가 한차례 있을 뿐이다. 대법원은 당장 26일에만 143건의 선고를 진행해야 할 1부를 국회가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때까지 손 놓고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결국 ‘대타’로 투입된 양 대법관은 후임 대법관이 임명돼 대법원 소부가 안정될 때까지 1·2부 선고에 모두 관여하게 됐다.
중대사안이나 판례 변경을 다루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무기한 연기됐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직접 재판장을 맡고 나머지 대법관 12명이 전원 참여하는 우리나라 사법부 최고 재판부다. 법적으로는 9명 이상의 대법관만 갖춰지면 선고가 가능하지만 중대사안을 다루는 만큼 의견 대립이 첨예한 실정에서 선고를 내리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심리 과정에만 통상 수개월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고육지책이 맞게 될 한계도 벌써 우려되고 있다. 심리가 소홀히 이뤄지거나 대법관의 견해차가 클 수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이 무한정 늦춰질 염려 때문이다. 대법원이 추산한 대법관 4명 공백에 따른 사건처리 지연 규모는 월평균 1500여건에 달한다. 법이 인정하는 국민의 권리 구제를 위한 마지막 절차가 업무량에 떠밀리는 형국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소리질렀다 약식기소된 백원우 전 민주통합당 의원의 국민장방해 사건 선고 역시 1부 소관이지만 미뤄졌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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