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90년대 전향 후 북한 민주화운동에 주력해 온 김영환씨. 그는 지난 3월 중국으로 건너가 탈북자를 돕거나 북한 인권에 대한 정보를 모으다 일주일도 채 안된 그달 29일 북한과 인접한 랴오닝성에서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중국에 있는 한국영사와의 면담은 그 후 한달 가까이 지나 이뤄졌다. 2차 면담은 다시 그 후 50일 가까이 지난 6월에야 진행됐다. 구금 후 잠을 못 자게 하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 김씨 본인이 밝히진 않았지만 전기고문을 포함한 강도 높은 물리적 고문도 있었던 걸로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김씨를 면담한 후 처음엔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2차 면담에서는 전기고문과 같이 강도 높은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힌 사실이지만, 김씨 신병이 중국에 묶여있는 만큼 우선 김씨를 석방시키는 게 우선이기에 석방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그랬다고 한다.
김씨와 함께 체포된 일행 3명도 고문을 당했다. 당초 정부는 이들이 영사접견을 거부하고 있다는 중국의 말을 그대로 믿고 처음엔 만나지 않았다. 김씨 일행이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중국측에 그런일이 있었는지 조사해 줄 것을 요구한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중국은 '자체 조사 결과 그런 일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몇차례 더 조사를 요구했지만 여전히 중국은 묵묵부답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자신이 당한 일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한국에 가서 얘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풀려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은 구금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조사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에 답이 없고, 한국은 중국이 답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손놓고 있는 형국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7일 국회에 나가 "국민보호가 우선이므로 철저하고 엄격한 재조사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투는 단호하지만 우선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당연히 해야 했을 일임에도 마치 처음 사건을 접하는 것처럼, 이질감도 느껴진다.
김씨가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에 대해 정부는 "김씨 본인이 공개할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현재로선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제기할 생각도 없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 거기에 북한까지 겹쳐 이번 사안이 외교적으로 결코 단순치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거대한 국가권력이 한 개인에 대해 가공할 만한 폭력을 행사하고도 모두가 입을 다무는 지금의 사태는 잘잘못을 따지는 차원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최대열 기자 dychoi@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