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어제 발표한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감사결과를 보면 2003년 카드사태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지난해 말 기준 7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2개 이상 카드로 돌려막기를 한 금액이 약 8조6000억원이다. 91만4000명이 4조7400억원의 현금서비스를, 61만6000명이 3조8300억원의 카드론을 썼다. 특히 4개 이상의 카드로 급히 돌려막은 금액이 3조1000억원이나 된다. 카드 돌려막기는 결제 능력이 없는 사람이 급히 다른 카드로 대출을 받아 막는 행위를 말한다.
카드 이용금액의 일정 비율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수수료를 내고 상환을 연장하는 리볼빙 잔액도 급증했다. 6개 전업계 카드사 리볼빙 자산 4조3000억원 중 7등급 이하 저신용자 몫이 절반이고, 1년 이상 장기 리볼빙 금액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저신용자와 장기 리볼빙 비중 모두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아졌다.
카드사들은 리볼빙을 새로운 서비스로 포장하지만 실제는 고금리 대출상품에 다름 아니다. 수수료로 연 5.9~28.8%를 내세우지만 주된 고객인 저신용자와 다중채무자들로선 20%를 넘는 고금리를 적용받는다. 카드사들이야 리볼빙으로 수익을 내지만 고객은 이자 부담이 커진다. 카드 이용액에 대한 결제를 늦춰 연체를 피할 수 있는 리볼빙은 일시적으로 카드 연체율을 낮추는 착시효과를 내는 부작용도 안고 있다.
이 같은 신용카드 관련 불편한 진실이 어찌 금융당국이 아닌 감사원 감사결과로 드러나는가. 금융감독원 산하 소비자보호처는 지난달 리볼빙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경보 1호'를 발령하는 데 그쳤다. 그 내용도 거래조건을 꼼꼼히 따지고 필요한 경우에만 이용하라는 데 머물렀다. 그러다가 이번에 저신용자를 상대로 소비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는데도 금융당국이 방치했다는 감사원의 훈수를 들었다.
이런 판에 올 1ㆍ4분기 신용카드 할부 비중이 17.4%로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일시불 결제 대신 3~6개월 할부가 급증했다. 카드 돌려막기나 리볼빙으로 연명하는 위험대출이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당국과 카드사들은 부실 위험이 큰 복수 카드 대출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함께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에 힘을 쏟아야 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