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농한기에 먹고 쓸 수 있는 ‘은퇴 징검다리’ 필요
우리나라의 평균 연령 44세 직장인의 기대수명은 82세, 은퇴 이후 희망 소비금액은 월 245만원이다. 그러나 기대수명까지 준비된 월평균 은퇴 후 소득은 155만원으로 지출액 대비 63.2%밖에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기대여명(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 살 수 있다고 기대되는 기간)이 더 늘어나 은퇴 후 노후자금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연구소는 최근 ‘생명표를 통한 장수 리스크 분석 및 대비 방안 고찰’에서 “대부분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살 가능성이 커 부족한 노후자금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통계청에서 매년 산출하는 생명표는 향후 의학 발달 등에 따라 달라지는 예상 사망률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소 추정돼 있다. 예를 들어 0세 남아의 경우 기존 사망률을 적용하면 기대여명이 77.2세지만 미래 예상 사망률 적용 시 기대여명은 95.3세로 18년이 늘어난다. 따라서 현재의 생명표를 바탕으로 은퇴 후 기간과 노후자금을 예측한다면 풍족한 노후 준비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조선규 퇴직연금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00세 시대는 다가올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이미 닥쳐온 현실이다”며 “정책 차원에서 임금피크제나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퇴자들은 부족한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무리하게 목표 수익률을 높이기보다는 세제 혜택을 주는 상품을 찾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최근 화두는 “은퇴에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을 꾸준히 다녀서 퇴직 후 생활비의 일부라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생활의 전부를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공적인 은퇴준비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은퇴 이후의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꼼꼼히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은퇴자산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20~30년 이후를 내다보고 길게 투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평균 은퇴연령인 55세부터 국민연금 수령이 시작되는 65세까지 소득의 공백기, ‘마(魔)의 10년’ 동안 먹고 쓸 수 있는 ‘소득의 징검다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만 60세부터 국민연금 수령이 가능하지만, 내년부터는 61세로 늦춰지고 2033년부터는 65세로 더 밀린다. 이른바 ‘롤오버 세대’(Roll-over: 만기 연장)의 노후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오진호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 직장인의 정년연령은 55세 전후로 변화가 없는 데 반해, 국민연금의 수령연령은 점차 늦춰지고 있다. 이 간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못하면 40년 정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은퇴생활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인연금, 선택 아닌 필수
55~65세 사이 소득의 공백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 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지난 2010년 말 기준 국민연금 1인 평균 수령액은 77만원이다. 전문가들은 50세 이상 부부 최저생활비(122만원) 기준으로는 1억2646만원, 부부 적정생활비(175만원) 기준으로는 1억8146만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소득의 공백기’를 대비하는 데는 개인연금이 가장 효과적인 상품으로 꼽힌다. 개인연금은 직장생활 기간 연간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있고 업계에서는 800만원까지 확대를 요구하고 있어 세테크에 더할 나위가 없는 금융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개인연금 상품은 55세부터 연금 수령이 가능하고 연금 수령 시 15.4%의 금융 소득세가 아닌 5.5%의 저율과세가 적용되는 장점도 누릴 수 있다.
젊어서 은퇴 준비, 축복의 시작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은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적절한 시기에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다. 또 라이프사이클상 부부가 필요로 하는 최저생활비만이라도 모을 생각이라면 젊을 때 적은 규모로 자금을 모으는 것이 현명하다 할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퇴직 이후 노후 기간이 40~50년이나 되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생활 시작 초반인 25~35세부터 은퇴 준비에 나서도 결코 이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노후대비 계획은 빨리 실천할수록 좋다. 20대부터 시작하면 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지만 40대에 시작하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윤희숙 신한은행 분당PB센터 팀장은 “20~30대에게 은퇴 준비란 단어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며 “조기 은퇴로 40~50대에 회사를 떠나가 되는 주변 사람들을 목격하고서야 은퇴준비에 관심을 두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20~30대의 재테크는 결혼준비가 기본이지만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소비와 저축이 필요한 시기”라며 “조금이라도 일찍 은퇴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현재 생활을 희생하지 않으며 적절한 은퇴준비 투자비중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전문가들은 25~35세의 은퇴준비가 가장 적합함을 강조하고 있다. 상당수 직장인이 40대 이후에는 막대한 자녀교육 비용 때문에 먼저 가입했던 상품도 해지 또는 납입을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30세를 전후해 연금저축 등 은퇴 준비 전용계좌를 만들어 적은 돈이라도 월급 일부를 꾸준히 복리로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을 땐 위험자산, 나이 들수록 안전자산
은퇴 전문가들은 또 소득이 적은 대신 투자기간이 길다는 장점을 가진 20~30대는 주식 등 고위험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 대신 은퇴 시기에 접어든 50대 이후에는 주식 비중은 낮추고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생애 맞춤형으로 설계된 ‘라이프사이클 펀드’의 경우 투자자가 20대일 때는 보통 자산의 8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이후 10년마다 주식투자 비중을 10%포인트씩 줄여 투자자가 은퇴하는 60대가 되면 주식비중이 20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코노믹 리뷰 조윤성 기자 korea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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