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의사협회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 보건복지부는 7월부터 치질ㆍ백내장 등 7개 질병에 대한 포괄수가제 의무화를 강행하기로 했다.
포괄수가제는 의료서비스의 표준화를 의미한다. 진료의 양과 상관없이 각 시술별로 정해진 금액만 내는 제도다. 병원마다 진료비가 달라 '싼 게 비지떡인가', '환자를 봉으로 아는 병원인가' 고민할 일도 최소한 7개 수술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반면 병원 입장에선 경영학개론을 다시 써야 하는 일이다. 자원을 투자할수록 손해니 그야말로 '최소한의' 진료만 해야 수익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변화는 국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줄 것인가.
의사가 평균 이상의 진료를 결정했을 때 그것은 과잉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포괄수가제는 과잉진료를 없앰과 동시에, 드물지만 필요했던 어떤 전문적 판단까지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낸다. 획일화는 피해자를 만들 수밖에 없다.
포괄수가제는 2002년 일부 병의원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성과를 보니 앞서 언급한 부작용은 생기지 않았더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진료기록에 의존한 평가가 이런 중대한 제도를 의무화 하는 데 충분한 신뢰도를 제공하느냐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는 새 제도를 받아들이며 매번 잘 짜여진 연구결과를 확보할 순 없다. 그래서 제도가 가지는 이론적 장점을 기대하며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린다. 국민들은 정부의 그런 정책적 판단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제대로 된 사후 평가의 중요성은 더 강조된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좋기만 한 제도'라는 발상에서 출발하는 듯한데 이건 좀 아니다. 당장 진료비를 싸게 해주고 "만족하냐"는 설문지를 돌리는 것이 정책의 주된 근거로 활용되는 건 적절치 않다.
정부는 7개 수술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질병군으로 포괄수가제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포괄수가제의 부작용은 복잡하고 어려운 질병일수록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돈을 덜 쓰면서 더 좋은 제도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의 부담은 줄겠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도 좋은 일일지는 다른 문제다. 예컨대 병원들은 치질수술에서 본 손해를, 포괄수가제가 적용되지 않는 다른 질병에서 만회하려 들 것이다. 이 제도를 먼저 도입한 독일처럼, 환자는 아픈데 표준치료는 끝났다며 퇴원을 강요하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질 수 있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속으로 곪는' 의료의 왜곡은 늘 있어왔다. 포괄수가제를 확대하기 전, 정부는 의료의 질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국민에게 논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려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촘촘한 안전망도 쳐놓고 제도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의료계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은 마치 소방수라도 된 양 시치미 떼고 물 뿌리는 일도 너무 자주하면 민망하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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