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포괄수가제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7월 1일 시행을 강행할 태세고 의사협회는 논의기구 탈퇴로 맞섰다.
포괄수가제 도입은 그들끼리의 다툼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라 의료 소비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의료비 지불방식의 근본을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달여간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한 포괄수가제에 대해 알아보자.
◆행위별수가제와 포괄수가제
우리는 병원에서 제공받은 의료서비스에 대해 돈을 낸다. 엑스레이를 찍었다면 엑스레이 값을 내고, 더 자세히 보기 위해 CT까지 찍었다면 또 CT값을 내는 식이다. 받은 서비스의 양만큼 지불하는 방식이라 해서 '행위별수가제(Fee for Service)'라 부른다.
이 제도에서 환자는 여러 종류의 의료서비스 중 원하는 것을 택할 수 있다. 의사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환자를 자유롭게 치료한다. 의료의 질은 올라가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대표적 단점은 병원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행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아프지 않아도 환자가 입원을 원하면 병원 입장에선 굳이 말릴 필요가 없는 것이나, 딱히 안 해도 될 검사를 또 시키는 등의 문제가 행위별수가제의 부작용이다.
반면 포괄수가제(DRG, Diagnosis Related Group Payment System)는 일종의 '정액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백내장 수술은 검사료, 약값 등을 모두 포함해 74만 5470원'이라고 아예 정해놓는 식이다.
행위별수가제에선 환자마다, 병원마다, 의사마다 비용이 달라 의료비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포괄수가제는 그런 걱정이 없다. 가격이 정해져 있으니 의사가 검사를 남발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전체적인 의료비는 감소하며, 건강보험재정을 운영하는 정부 입장에선 의료비 관리도 쉬워진다.
반면 의사들은 원가를 줄이려고 노력하게 되므로 의료의 질은 하락할 위험이 있다. 되도록 행위를 줄여야 이익이니 때로는 필요한 시술이 생략될 수 있고 일부러 싸구려 재료를 사용해 원가를 줄이려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포괄수가제 왜 도입하려 하나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나라들은 꽤 많다. 90년대 말 우리나라도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쉽지 않았다. 2002년부터 '원하는' 병원에 한해 부분적으로 도입됐다. 질병 치료의 패턴이 매우 단순해 '정액제'로 운영하기 좋은 7개 질병만 대상으로 했다.
막상 시행해보니 동네병원의 83%가 포괄수가제에 참여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정부가 그간 자료를 분석해봤는데 별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올 7월부터 '선택'이 아닌 '의무'로 제도를 바꾸려는 것이다. 여전히 백내장ㆍ편도선ㆍ맹장염ㆍ탈장ㆍ치질ㆍ자궁ㆍ제왕절개 등 7가지 질병 치료만 병원급과 의원급에 한해 의무 적용된다.
◆의사들은 왜 반대하나
의사협회가 포괄수가제 의무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복잡하다. 우선 정부의 통제를 받기 싫어하는 전문가의 기본 정서 측면이 있다. 의사들은 포괄수가제가 의사 개인의 전문가적 판단 여지를 없애고 정해진 의료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라 받아들인다.
수입 감소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 수입이 과잉진료로 나온 것이든, 양심에 따라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 행한 것이든, 포괄수가제는 구분하지 않고 정해진 금액 이상의 것은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포괄수가제가 더 많은 질병으로 확대될까 하는 점이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7개 질병 외 표준화가 용이한 다른 질병에 대한 포괄수가제 확대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의사들의 수입은 갈수록 줄고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되며 모든 의료는 '획일화' 되는 것이란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개인이 '사비'를 털어 투자한 병원을 정부가 마치 '공공의료기관'인 양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출범한 의사협회 새 집행부가 회원들에게 '정부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것도 극렬한 반대의 이유 중 하나다.
◆포괄수가제의 향방은?
최소한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질병의 경우 국민 의료비가 줄어들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민건강에도 이로울 것인가에 대해선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지난 10여년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최소한 포괄수가제 적용이 의료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증거는 없다. 만일 그랬다면 포괄수가제 시행 병원에서 치료 받은 사람의 병세가 악화되거나 재발해 다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제도가 좀 더 복잡한 질병으로 확대되어도 그럴 것인가에 대해선 누구도 확답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의료에 제거할 수 있는 '거품'이 다분히 있다고 판단하는 정부의 생각과, 포괄수가제는 의료의 질을 '하향평준화' 시킬 것이라며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의사들의 항변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의사협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개 질병의 병의원 의무화는 예정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법 개정 사안이 아니며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된다. 총 24명의 위원 중 의사협회가 추천한 2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위원은 포괄수가제 의무화에 찬성하고 있다고 복지부 관계자는 전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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