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처럼 일다가 돌풍처럼 사라지고 천리 밖을 오락가락 하기도 한다. 잃어버리고 지나가 버린 시간들의 보물창고. 기억을 쫒는다.
그곳엔 부처도 살고, 앵무새도 날고, 출렁이는 파도에 두려워 떠 있는 종이배도 말을 달려 아득한 먼 곳 자유를 찾아가는 여자도 있다. 구름 흘러가고 밤비 내리고 부처님 오신 날 음덕(陰德)에 깊이 사색했던 시간의 기억이 있다. 그런 시간 속에, 시간이 흐르고 불타고 쏟아져 내리고 씻긴다.
현실 밖의 세계와 현실에 반쯤씩 걸쳐있는 화면의 그녀. 어정쩡한 상태에서 관망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본래는 당찬 여성이되 이상과 현실의 중간쯤에 주저앉은 현대여성을 떠올리게도 한다. 여인의 손에 쥐어진 붓. 구도의 과정일 것이다.
작가는 “불화를 그리는 일은 불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을 추구하고 종교적 삶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그 자체로 구도적이다. 나는 항상 목판 앞에 앉으면 조각하지 않는 판 보다 못 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목판작업은 어떤 색채나 형상을 중첩 시켜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깎아내면서 형상을 찾아간다. 여인이 붓을 통해 구도적 삶을 실현한다는 것은 잡념을 소멸해가며 누구나 자신이 가진 능력과 역할 속에서 이상적 삶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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