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유럽이 다시 세계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주요국 증시 대부분이 120일 이동평균선을 이탈, 추세이탈에 대한 우려까지 높다. 밤새 미국과 유럽증시는 하락세를 또 이어갔다. 국내 증시 역시 전날 급락으로 장부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 문제가 당장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난해 위기수준까지 내몰리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저점까지 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추가 하락하더라도 낙폭은 제한적일 것이란 해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쉽게 저가매수에 적극 나서라고 권하지 못하고 있다.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지만 V자 반등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미국, 중국 어느 한 곳도 아직은 반등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다. 가격 메리트는 생겼지만 모멘텀은 없는 증시다. 가격 메리트를 믿고 사서 기다리느냐, 모멘텀이 생길때까지 시장을 지켜보느냐, 증시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KOSPI 1800선은 12개월 예상 PBR 기준 1배 지점이며 중장기적으로 중요한 지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KOSPI 1800선 근처는 1차적으로 분할매수 가능한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주식시장이 장부가치 이하로 급락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와 프랑스 총선과 스페인, 이탈리아로 전염문제, 미국의 3차 양적완화에 대한 불확실성 및 경기부양보다 안정을 원하는 중국 등 V자 반등이 본격적으로 나오기는 힘든 구간이다. 상당 기간 아래 위로 출렁이는 가운데 기간 조정이 동반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그간 전망했던 스트레스 요인들이 지난해 8월과 9월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최근의 요인들은 한국투자증권이 기존에 제시했던 ‘상저하고’의 전망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올해 연말까지 KOSPI 밴드는 1800~2200으로 제시한다.
◆조용현 하나대투증권 투자전략팀장= 시장에서 제기되는 그리스 시나리오의 컨센서스는 1)긴축 이행, 2)질서정연한 디폴트, 3)무질서한 디폴트와 유로존 붕괴이며, 시나리오 2)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내증시의 밸류에이션은 8.2배까지 하락해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제반 위기가 부각될 때 마다 강력한 지지력을 발휘했던 수준에 근접했다. 시나리오 2)의 가능성이 높다면 PER 8배(1800)를 추세적으로 이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스의 상황에 따라 시장의 불확실성은 유동적이고 예측의 범주에 있는 변수가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인 시장대응을 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밸류에이션은 극단적 상황을 반영한 수준에 근접하며 가격매력이 발생하고 있고, 글로벌정책 공조 가능성을 고려해 보면 추가적인 급락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박성훈 우리투증권 애널리스트=금융시장이 지난해 유럽사태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그리스의 연정 구성 실패로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일부 유럽국가들의 국채금리와 CDS 프리미엄의 동반 상승세가 전개되고 있으며, 달러화대비 유로화의 약세도 심화되고 있다.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하면서 미국 다우지수를 비롯해 주요 44개국 중 72%가 120일선을 하향이탈하며 추세이탈에 대한 우려감마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투매에 동참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로 첫째, 금융시장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정책공조의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주요국들의 정책공조가 다시 강화될 여지가 커지고 있어 오는 23일로 예정되어 있는 EU 정상회의 등을 통해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악재에 대한 주가반영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IT와 자동차를 제외한 기업들의 주가가 유럽사태로 인한 위기감이 고조됐던 지난해 10월 수준으로 이미 내려앉는 등 상당폭 선조정을 거친 상황인 만큼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충격 역시 제한적일 개연성이 있다. 유럽사태의 전개방향과 펀더멘털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실적전망(PER)은 달라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산가치(PBR)를 고려한 밸류에이션 매력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치환 대우증권 애널리스트=유로존이 겪고 있는 재정과 은행, 경제의 위기는 서로 연결돼 있다. 2009년 글로벌 위기 여파로 부실해진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재정지출이 재정위기로 이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긴축재정이 경기위축을, 경기위축은 다시 민간대출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은행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세가지 위기가 서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한가지를 해결하는 정책만으로 위기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복합적인 해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한 긴축과 거시경제 회복을 위한 성장정책의 조화가 필요하다. 긴축정책에 유연성을 높이고, 경기부양적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주 23일에 예정된 EU특별 정상회담에서 현행 긴축 일변도의 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현실화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채권 대비 증시의 투자매력도 측면에서 보면 추가적인 가격조정의 폭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전필수 기자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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