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공상과학 속에 등장하는 '냉동인간' 기술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세포 내 수분이 얼었다 녹는 과정에서 세포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냉동인간도 현실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내 연구진이 액체를 원자 단위까지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카이스트는 6일 이정용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그래핀을 이용해 액체 내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원자단위로 관찰,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액체를 원자단위까지 관찰하는 것은 지난 80년간 과학계의 오랜 숙원으로 꼽혀 왔다. 투과전자현미경이 등장하고도 액체를 원자단위로 관찰하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투과전자현미경은 아주 짧은 파장의 전자빔을 이용해 광학현미경보다 관찰대상을 1000배가량 자세히 식별할 수 있다. 계면 결정구조 등을 원자단위로 분석할 수 있어 차세대 신소재 연구에 필수적인 장비로 꼽힌다. 그러나 투과전자현미경은 높은 진공상태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액체 시료는 바로 공중으로 분해돼버린다. 또한 액체를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 가능한 수백 나노미터(nm)이하의 얇은 막으로 만들기도 매우 어려웠다.
이 교수 연구팀은 그래핀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연구팀은 그래핀 두 장을 겹친 뒤 그 사이에 액체 시료를 넣는 '샌드위치' 기법을 개발해냈다. 그래핀이 액체를 넣는 용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 벌집구조로 결합돼있는 신소재로 2차원에 가까울 만큼 얇다. 액체를 사이에 가둬도 두께가 수백 나노미터에 불과하다. 또한 강도가 매우 뛰어나 고진공 환경에서도 액체를 고정시킬 수 있다. 투명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리 어항 속 물고기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투명 그래핀에 액체를 담아 결정을 원자단위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로 액체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과학 현상을 규명할 수 있게 됐다. 혈액 속 바이러스 분석이나 몸 속 결석의 형성과정, 액체 내에서의 여러가지 촉매 반응 관찰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멀리 내다보면 냉동인간을 만들 때 세포가 얼었다 녹는 과정에서 왜 파괴가 일어나는지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생체세포처럼 액체 시료를 관찰할 때는 아예 냉동시켜서 보거나 말려서 봤다"며 "생체세포는 물론이고 혈액도 바로 볼 수 있게 돼 의학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고, 나노테크놀로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4월호와 온라인판에 동시 게재됐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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