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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100퍼센트]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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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100퍼센트]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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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건축학개론>의 서연(수지/한가인)은 1995년에 누구의 CD를 들었을까. 서연이 전람회를 듣던 그 때가 1995년일 수도 있지만, 서연이 승민(이제훈/엄태웅)에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권하며 CD를 빌려준 것은 1학년 2학기 가을이다. 그 앨범은 1994년 5월에 나왔으니, 두 사람은 94학번 새내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1학년이 끝난 뒤, 서연은 전람회 대신 1995년에 나온 앨범 한 장을 듣지 않았을까. 1995년의 베스트셀러였고, 지금은 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인 김건모 3집.

전람회는 ‘기억의 습작’에서 “이젠 버틸 수 없다고 /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이라 사랑을 읊었다. 김건모는 ‘잘못된 만남’에서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널 내 친구에게 소개 시켜줬고 / 그런 만남이 있은 후로부터 우리는 자주 함께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 것뿐인데”라며 투덜거렸다. 발라드에서 댄스로, 낭만적인 사랑이 그렇고 그런 연애담으로. 새 시대와 새 연애법이 왔다. ‘기억의 습작’ 같은 곡은 전처럼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90년대는 시대 전체가 이 모든 것들의 과도기의 시작과 끝이었다.


<건축학개론>에서 현재가 과거보다 중요한 이유


[강명석의 100퍼센트]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승민은 첫사랑의 집 개축을 통해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과 첫사랑을 조금이나마 더 받아들인다.

승민에게 서연은 ‘기억의 습작’이자 ‘잘못된 만남’이었을 것이다. 승민은 턴테이블은 있지만 CDP는 없고, 멋 부릴 때 ‘GUESS’가 아닌 ‘GEUSS’를 입었다. 컴퓨터는 알아도 PC통신은 몰랐고, 사랑이란 말은 알아도 술 마시고 하룻밤 같이 자는 관계는 몰랐다. 이런 삶은 강 건너 사는 부유한 선배의 것이었다. 이런 승민에게 서연은 압구정이 아닌 제주도에서 와서 ‘기억의 습작’을 권했다. 동시에 반지하라도 강남에서 살기를, 졸업하면 전공인 음악 대신 아나운서가 돼서 유명해지기를 바랐다. 서연은 승민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게 살려고 했다. 승민이 서연에게 서연도 아는 부유한 선배에 대해 묻는 것은 공포감의 반영이다. 서연이 강남 살고, 차를 몰고, 하룻밤 관계를 즐기는 남자에게 갈 수 있다는 공포. 승민과 서연의 관계가 끝나던 그 날 밤, 승민은 서연을 직접 만나 고백하려 하고, 서연은 호프집에서 삐삐로 승민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호프집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기억의 습작’이 아니라 015B의 ‘신인류의 사랑’이다. “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 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 거야”라던. 그 날 승민은 서연을 ‘신 인류의 사랑’에 가까운 여자라 확신했고, ‘샹년’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2000년대가 되자 ‘기억의 습작’ 같은 곡은 히트하기 더 어려워졌다. 2012년에 낭만적인 첫사랑이란 MBC <해를 품은 달>처럼 조선시대나 가야 그럴 듯해 보인다. 승민은 “꺼져줄래”라며 서연을 밀어냈지만, 서연 같은 여자들이 더 많은 이 시대는 못 밀쳤다. 제주도 출신의 서연이 강남에서 살기를 바랐듯, 정릉에서 사는 승민은 부유한 젊은 연인(고준희)과 결혼해 미국에서 원룸을 마련하고 공부할 계획이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중요한 건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을 돌아본다는 행위에 있다.


대학교 1학년의 승민에게 지금의 서연은 아나운서 시험에서 떨어지고, 돈 많은 남자와 이혼한 여자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30대의 승민은 서연이 병든 아버지를 모셔야 하고, 먹고 살기 위해 위자료라도 많이 받아야 했다는 것도 보인다. 과거의 승민은 진심을 말하지 못했고, 서연의 진심도 듣지 않았다. 서연이 잠든 사이에 몰래 키스했을 뿐이다. 승민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먼저 손을 잡고, 첫 눈 오는 날 만나자고 한 쪽은 서연이었다. <건축학개론>에서 현재가 과거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 때는 첫사랑의 기적을, 대학 졸업 뒤 찾아올 밝은 미래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람과 달랐고, 승민은 원치 않았던 현재에 적응했다. 그런 뒤에야 승민은 재회한 서연을 통해 그 시절의 기억을 개축한다. 서연은 술에 취해 부유한 선배의 부축을 받았지만 키스는 거부했다. 강남에서 살고 싶었지만 정릉의 빈 집에서 승민과 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부유하길 원하는 여성에게도 사랑은 소중하다. 정릉의 빈 집은 두 사람만이 들어가는 단절된 공간이었다. 서연의 새로운 집은 벽이 모두 창으로 뚫려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승민은 첫사랑의 집 개축을 통해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과 첫사랑을 조금이나마 더 받아들인다.


남성이 스스로 쓴 반성문 같은 성장 영화


[강명석의 100퍼센트]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건축학개론>은 1990년대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자, 남성이 스스로 쓴 반성문 같은 어른의 성장 영화다.


<건축학개론>에서 1990년대는 원치 않은 변화 속에서 첫사랑을 잃은 남자의 상실과 패배의 시간이다. ‘기억의 습작’의 시대는 사라졌고, ‘잘못된 만남’ 이후의 시대는 힘겹기만 하다. 그럼에도 그 현실에 “꺼져줄래”라고 말하지도, 만족도 하지 못한 채 산다. 1994년에나 2012년에나 아무 것도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갖지 못했다는 것. <건축학개론>은 그 상실에서 놀랍게도 자기연민 대신 반성을 이끌어낸다. 오해했고, 거절했고, 욕했던 첫사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어긋난 첫사랑을, 지어주지 못했던 서연의 집을 완공한다. <건축학개론>에서 서연은 술에 취하자 욕하고, 승민이 잠든 있는 사이 옆에 눕는다. 이건 과거에는 승민이 할 만한 행동들이다. 시간은 흘렀고, 여성은 바뀌었다. 아니, 원래 그러던 것을 남성이 이제야 보았다. 승민의 어머니는 홀로 그를 키우기 위해 시장에서 악착같이 살았다. 승민이 이제야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을 뿐이다.


과거의 승민에게 서연은 낯설고 불길했던 새로운 시절과 닮아있었다. 현재의 승민에게 서연은 신축 불가능한 지난 시절의 사랑이다. 첫사랑은 보다 완결된 기억으로 수정됐을 뿐 현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승민은 기억의 보정을 통해 서연 같은 여성을 더 이상 ‘샹년’이라고 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자는 이 시대의 꼰대가 되지 않을 가능성을 얻었다. 그 시절에 자기감정에 솔직했던 납뜩이(조정석)도, 부유한 선배도 되지 못했던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그 시절의 첫사랑을 솔직하게 응시하는 과정은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상실의 과거와 온전한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위안도 줄 것이다. 상실의 정서로 공감을, 이별의 완성으로 위안을 주는 이 영화는 신세대의 시절로 규정지어지던 1990년대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자, 남성이 스스로 쓴 반성문 같은 어른의 성장 영화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첫 주,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청춘 나이트’를 방영한 것은 필연처럼 보인다. 1990년대에 누군가는 나이트클럽에서 김건모, 클론, 박미경을 들으며 놀았다. 하지만 그들도 전람회와 유희열과 윤종신이 소중했다. 1990년대의 그 청춘들이 2012년에 그 시절을 솔직하게 바라보거나, 보다 다양하게 즐긴다. ‘청춘 나이트’를 보고 어떤 음악이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1990년대의 집에 갇혀 과거의 영화와 상실을 지금 세대에게 강요하는 꼰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내가 사는 곳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인생 역시 내가 살던 시절과, 그 때를 함께한 사람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다고 인생과 사람을 이해할리는 없다. 승민은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나면서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서연을 이해했고, 더는 어머니에게 투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아내를 서연처럼 이해할지는 알 수 없다. 서연이 병든 아버지를 극진히 모신다는 설정은 왠지 남자가 규정하는 착한 여성의 한계선을 결정지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럼에도 <건축학개론>은 과거를 분노와 연민 없이 돌아봤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확인시킨다. 그러면 현재를 향해 걸어가면 될 뿐이다. 배워야할 수업은 많고 많으니.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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