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햇살 좋은 가을날 오후 추령 옛길 더듬어 오르다 만난 백년찻집 다탁 위에 남은 그 사람의 흔적, 꾸깃꾸깃 숨소리 묻어 있는 방명록 몇 권에도 세상은 행복한 사람보다 아픈 사람이 더 많습니다// 누군가 적어 놓았습니다 아프고 지친 몸 버리고 갔다가 백년 후에 거두러 오겠다고 합니다, 나는 웃습니다 계피차 한 잔이 다 식도록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 아파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습니다 (……)
■ 추사 고택에 갔을 때 고택 뒤 영정을 모신 사당에 놓인 방명록을 잠깐 읽어본 기억이 납니다. 추사를 의식해 붓글씨처럼 공들여 쓴 것도 있고 약간의 감회를 적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사당 옆과 뒷담에 심어진 수죽들의 잎들이 서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짧은 기척을 남겼지요. 마치 빈 집에서 추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빼곡이 들어찬 이름들에게 말을 건네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쓰지 못하고 돌아온 시인은, 이 안쓰럽고 아픈 소망을 담은 방명록, 아니 한 살이를 요약해주는 타임캡슐을 기억 속에 발굴해와서 문득 건넵니다. 생의 얼개와 시간 위에 흩어지는 무상(無常)이 한 눈에 잡힙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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