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사실 인사 적체가 심하다. 그래서 한 두 분이 외부로 나가줘야 숨통이 트이는데..."
금융감독원 한 간부가 정기인사를 앞두고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권 감사로 나가는 길이 막히면서 인력 순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금감원 임직원들은 오는 3월 인사를 놓고 크게 술렁거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위원장으로 옮기는 박원호 부원장이 사표를 제출했고, 노태식 은행연합회 후임으로 김영대 부원장보 선임 가능성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재판을 앞두고 있는 김장호 부원장보 후임까지 감안하면 고위직 임원 연쇄 이동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내부적으로는 금융권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난 여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이번 인사를 통해 고참급 국장들이 승진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인사 동맥경화' 현상이 해소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3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낙하산 인사 논란에 대해 "(은행연합회 부회장 인사는)회원사 말을 들어 결정할 것"이라며 "원하지 않으면 (부원장보를)안보내겠다"고 말했다.
권 원장이 들끓는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지만, 금융권은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간 금융 조사 감독권한을 가지고 있는 금감원과 불편한 관계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정기인사 방향에 대해 '조직 안정'을 최우선으로 꼽아 내부 승진 발탁을 염두해두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고참 간부의 외부 이동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한 셈이다.
사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금융기관 간부들이 공석될 때마다 금감원 내부에서 하마평이 이어져왔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자리가 비었을 때는 고참 부원장이 후배들을 위해 용단을 내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감사 자리를 금감원 출신 간부가 독식하는 것도 여전하다. 은행, 보험,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에 금감원 출신 감사 45명이 여전히 활동중이다. 저축은행 사태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지금도 금감원 시각 변화는 없는 듯하다.
조태진 기자 tj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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