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이란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기업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달러 거래에서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은행들은 매번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고 정부는 나서지 않은 채 눈치만 보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국제 정세 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대(對)이란 제재 참여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부가 '나 몰라라'식으로 방관하는 태도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란 금융제재가 본격화 된 지난 2010년 직전 우리나라와 이란과의 교역액은 10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만만치 않은 규모였고 지금도 2000여개가 넘는 기업이 거래할 정도로 큰 시장이다.
이번에도 테자랏은행과의 갑작스런 금융거래 중단으로 기업들은 계약파기 등 클레임을 제기당할 위험에 처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일까지 이란과 교역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은행들이 지난달 23일 선적분 기준으로 거래를 중단시키면서 60개 업체(577억원)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응답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응답한 기업외에 이란 거래 기업들을 포함하면 피해라고 주장하는 집계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며 "선적분 기준을 중단을 신용장 개설 기준 중단으로 바꿔 기업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지식경제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테자랏은행을 아직 국내 제재대상 리스트에 넣지 않았다"고만 말하고 책임을 넘기고 있다.
지식경제부 전략물자관리팀은 미주협력과로, 미주협력과는 다시 기획재정부 외환제도과로 전화를 돌렸다. 금융제재와 외환전산망을 담당하는 외환제도과에서는 담당과장은 새로 바뀌어서, 실무자는 부서가 새로 바뀔 것이라 내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호남지역의 철강 수출업체 S스틸 대표는 "이란 제재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갑작스런 거래중단으로 기업이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와 은행이 도움을 줘야하는데 모두 모른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10억원 가량의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7월 미국의 제재로 국내은행의 이란 거래가 전면중단됐을 때도 유관 기관인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등은 이에 대해 아무런 안내나 사전 경고조치를 취하지 않아 여러 기업들이 부도 위험을 겪었다.
이때도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은 2개월 만에 지침을 만들어 기업체에 통보했다.
지난해 11월에도 우리은행이 이미 선적을 끝낸 이란 수출 물품에 대한 네고(Negotiation)를 거부해 수출 기업들이 곤란에 빠졌었다.
한편 이번 거래 중단에 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부나 기업들로부터 애로사항이 접수된 것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테자랏은행은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연루돼 제재를 받은 다른 금융기관에 금융 서비스를 해준 혐의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테자랏은행은 이란에서 세번째로 큰 은행으로 이란 내 2000여개의 지점을 갖고 있다.
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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