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호세프가 취임한 지 이달로 1년 1개월을 맞았다. 하지만 전 세계인의 머리 속에 각인된 브라질 대통령은 여전히 룰라다. 룰라는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다. 과거 다섯번이나 대선에 나왔고 2003년 취임 이후 재선에 성공했으나 3선 금지에 묶여 호세프에게 대권을 넘겨줬다.
룰라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그의 출신(노동자, 좌파)을 보고 성장보다 분배, 기업보다 노동자, 경제보다 복지중심의 정책을 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룰라는 '삼바리더십'을 통해 브라질 경제를 춤추게 했다. 집권기간인 2003∼2009년 8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4%를 기록했다. 이전 20년간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퇴임하는 해인 2010년에는 7%가 넘는 성장률을 냈다.
브라질은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 만성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신했다. 2003∼2010년 15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룰라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킨 결과"라고 말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올림픽이 지나면 브라질이 얼마나 더 성장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 해에 4.11총선과 12.19 대통령선거를 앞둔 대한민국에는 경제민주화 열풍이 불고 있다. '맞춤형복지'(새누리당), '보편적복지'(민주통합당)라는 포장만 다르지 내용물은 비슷하다. 남녀노소, 모든 계층에 복지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복지에 필요한 지출은 1%(고소득자와 대기업)에서 갹출하겠다는 점도 공통된다.
민주당은 재벌을 개혁하고 대규모 증세를 한다는 것이고 새누리당은 현재의 왜곡을 시정하고 일부 증세를 한다는 것이다. 당명을 빼고 총선공약만 놓고 보면 어느 당 공약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정치권은 '좌클릭','좌파정책'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119조 2항은 균형성장과 소득분배, 경제력 남용방지를 위해 국가가 일정 수준 개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여야 어디에도 '성장'을 말하는 이가 없다. 성장을 통해 세수 전반의 파이를 키우는 대신 1%의 세금을 더 쥐어짜서 99%에 나눠주겠다는 논리다.
소득세는 상위1%가 전체 소득세수의 45%를 내고, 법인세는 상위 1% 기업이 전체 법인세수의 80% 이상을 내고 있다. 반면에 근로소득자와 사업소득자 중 소득세를 내지 않는 비율은 40%에 이른다. 인구로는 840만명에 해당된다.
과세와 탈세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일은 매우 정교하고, 까다롭고, 이해가 첨예하다. 이에 비해 증세는 쉽다. 이대로라면 여야 누가 정권을 잡든, 다수당이 되든 분배에 올인할 것이다. 5년 뒤에는 실패한 분배정책을 놓고 서로 네 탓 싸움을 할 게 뻔하다. 욕 하면서 닮는다지만 여야 모두 자신들의 실패를 교훈 삼은 반면교사는 없어 보인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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