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지난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는 글로벌 조선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IHI 등 자국 조선업체들과 협력해 소형 유조선 건조를 위한 기술과 엔진 등 주요 기기의 수출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동남아 국가 조선소에 선박 설계 건조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엔진 등 관련 장비는 일본 기업의 것을 구입해 달라는 것이죠.
선박 건조 기술을 판다는 것은 조선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특히 설계는 조선산업에서도 최고 핵심 기술에 속하며, 다른 국가에 전수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일본은 기술 보호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하고, 자부심도 강한 국가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일본이, 한국 조선업체들도 거의 해 본 일이 없는 기술 판매를, 그것도 정부와 업계가 손 잡고 추진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에 놓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조선ㆍ해운 시장 분석기관인 클락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이 수주한 선박은 15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한국 1360만CGT, 중국 920만CGT와 비교가 안될 만큼 위축됐습니다. 수주 잔량도 683척ㆍ1400만CGT에 불과해 한국 1166척ㆍ3770만CGT, 중국 2557척ㆍ4500만CGT에 한창 못 미칩니다. 자국 해운업계의 발주 지원마저 끊기면 향후 2~3년 후에는 수주 물량이 바닥나 조업을 멈춰야 할 상황에 몰렸습니다.
31년 만의 무역적자 발표는 일본 제조업계에 하라키리(割腹ㆍ할복) 자살을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생존을 위해 어떤 일도 불사할 것입니다. 기술 판매는 바로 그 방안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이번 전략은 그저 기술을 팔아치우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올해부터 신조 시장은 금융 동원력을 상실한 선진국 대형 선주 대신 정부의 영향력이 큰 개발도상국 선주의 힘이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개도국들은 조선산업 부흥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개도국에 기술을 판매해 조선산업 육성을 지원하면, 개도국 정부들은 막대한 예산을 조선ㆍ해운 부문에 배정할 것입니다. 당연히 개도국 정부의 투자예산은 일본 조선업계에 돌아갈 것입니다. 돈도 벌고 해당 국가의 조선산업 지배력을 키울 수 있으니, 일본으로서는 손해 볼 장사는 아니라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 조선업계를 동정어린 시각으로 바라봐선 안 될 것입니다. 그래도 한 때는 세계 조선업계를 주름잡았던 일본이었습니다. 단순히 기술을 팔아 수주를 구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한국을 견제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조선업계는 절대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되겠습니다.
채명석 기자 oricm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