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소아암 성기웅 삼성암센터 소아암센터장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우리 아이가 왜 암에 걸렸을까. 어른처럼 술·담배를 한 것도 아니고 나쁜 음식을 먹인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결국 '유전' 때문인가. 부모들은 자책한다. 자책은 "어떻게든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이어지고, 부모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강한 의지는 분명 치료에 도움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실제 그렇다.
◆아이가 어른보다 암에 강한 이유
소아암의 각 종류는 모두 희귀병이다. 어른들의 희귀병은 치료제도 적고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아이는 다르다.
전체로 놓고 보면 소아암의 80% 정도가 완치된다. 생존기간을 3∼5년만 확보해도 큰 의미가 있는 성인암과 달리, 소아암은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게 최종 목적이다. 그럼에도 완치율이 이렇게 높다는 사실에 부모들은 우선 혼란스런 마음을 추스릴 필요가 있다.
성기웅 삼성암센터 소아암센터장은 "소아암은 전신에 암이 퍼져 있는 경우도 완치율이 상당히 높다. 암의 특성상 항암제에 반응이 좋고 조혈모세포이식술의 발전이 치료율 향상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완치율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가슴 먹먹하면서도 기특한 아이들만의 특징이다. 치료기술이 발전했다지만 소아암병동의 모습은 오래된 드라마 한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머리를 밀고 링거를 꽂은 채 무균실에서 힘들게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치료성적을 높이기 위해 아이들은 어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항암제를 투여받게 된다.
"조그만 것들이 얼마나 괴로울까" 부모 입장에선 가슴이 아프지만, 신기하게도 항암치료를 제법 잘 견딘다. 성 센터장은 "갖가지 걱정과 공포에 휩싸인 어른보다 심리적으로 더 안정돼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 마음 이해는 하지만…
암을 보는 의사들은 공통적으로 "검증 안 된 건강기능식품 등을 조심하라"고 지적한다. 소아암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가 힘들게 치료받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긴다. 이를 이용하는 업자들이 따라 붙는 건 다음 순서다.
의사들이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심지어는 의사 몰래 약이나 음식을 해 먹이는 부모도 많다고 한다. 아이의 신장기능이 갑자기 나빠져 "도대체 뭘 먹였냐"고 캐물으면 그제서야 "좋다고 하길래…"라며 얼버무리기도 한다.
성 센터장은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는 독성을 견딜 수 있는 한계치까지 자기 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여기에 또 다른 독인 한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을 먹이면 치료가 제대로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한편 모든 소아암 치료의 목적은 '근치적(根治的)' 즉 병을 아예 고치는 것이다. 하지만 재발이 생기고 항암제도 더 이상 듣지 않으면 목표를 선회할 수밖에 없다. 성 센터장은 "완화치료를 결정하고 동의를 받는 순간이 의사로서 가장 힘든 때"라며 "부모들은 '아이가 죽게 놔두는 결정에 동의하란 말인가'라며 의료진과의 '동맹'을 깨뜨리게 된다"고 아쉬워했다.
부모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성 센터장은 "그래도 생각을 조금 달리 해줬으면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는 매우 철학적인 문제입니다. 또 그 어려운 선택의 짐은 결국 부모가 지는 것이지요. 무조건 모든 시도를 고집한다면 오히려 아이를 힘들게만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완화치료를 받아들인 부모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게 그 현실에서는 최선이기 때문이죠."
◆건강한 성인 만들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아쉬워
항암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각종 후유증에 시달린다. 치아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을 수 있고, 어른이 돼 성인병 발생 위험도 크다. 다른 암에 걸릴 위험도 정상인보다 조금 높다.
의료의 발달로 당장의 완치율은 높아졌지만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후속 프로그램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성 센터장은 "항암지료 후 치아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치과의사가 수도권 대형병원에만 있다는 것이 모든 현실을 말해준다"며 "의료 시스템조차 이 정도인데 심리, 교육 등 각종 사회적응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
치료 후 아이들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책임은 오로지 부모의 몫이다. 학습문제부터 심리치료, 장애극복 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기껏해야 "어디가 뭐를 잘한다더라"는 식으로 환자 부모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성 센터장은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를 육성하고 수도권과 지방에 고르게 배치해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성기웅 센터장은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97년 삼성서울병원 소아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2009년 소아뇌종양학회와 대한혈액학회에서 소아암 퇴치를 위한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각각 아해우수연구상과 우수연구자상을 수상했다. 2009년부터 삼성암센터를 이끌고 있다.
◆소아암환자의 감염예방을 위한 식습관 요령
*언제든지 먹어도 되는 음식 :
2시간 내 끓인 음식(물), 삶거나 볶은 김치, 완숙 계란, 익힌 견과류, 익힌 야채, 캔 과일
*백혈구 수치가 낮을 때 먹으면 안 되는 음식 :
끓이지 않은 음식, 2시간 이상 상온에 방치한 음식, 생야채, 생과일, 냉장과일쥬스
*치료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먹으면 안 되는 음식 :
요구르트 등 유산균 음료, 정수기 물, 아이스크림, 익히지 않은 견과류, 끓이지 않은 김치나 고추장ㆍ된장, 반숙 및 생계란, 일반 우유, 케이크(특히 생크림)
◆퇴원한 소아암환자가 즉시 응급실을 가야하는 경우
*열이 38도 이상 나는 경우
*상처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하거나 농 같은 분비물이 있는 경우
*구토나 설사 횟수나 양이 늘고, 소변보는 횟수나 양이 감소한 경우
*헤파린 주입 후 열이 나는 경우
*출혈 후 멈추지 않는 경우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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