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재현 기자]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간에는 '비통약성'이 있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7일부터 활동에 들어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뉴미디어정보심의팀 출범 과정에서도 이같은 비통약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어쩌면 같은 시대의 같은 사안을 놓고도 그렇게 시각이 다른지.
'사적인 공간이라 하더라도 영향력이 커지면 공적인 역할을 하니 당연히 심의 대상'이라는 주장과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규제하겠다는 발상자체가 구시대적'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향후 심의팀의 활동 과정에서 많은 잡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여야 정치권까지 문제가 있다고 보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일 표결로 강행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추천의원은 회의 도중에 의사봉을 들고 나가고 부위원장이 사무국 직원들에게 "잡아오라"고 시키는 촌극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국회의 나쁜 모습을 빼닮았다.
여당의 한 의원은 "야당 보다 우리한테 더 피해"라면서 방통위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이 또한 건설적인 해법을 찾기 보다는 정치적 이해득실의 기준에서만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자는 뉴미디어정보심의팀 설치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패러다임이 바뀌면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SNS의 도도한 흐름은 머지 않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물론 SNS에 문제가 없지 않다. 빛 속도로, 핵폭발 하듯 전파되는 정보 확산 시스템을 생각하면 잘못된 정보의 유통에 따른 부작용도 그만큼 클수밖에 없다.
그러나 SNS에 자정능력이 있음도 무시돼선 안된다. 불과 3~4년 전에 뜨거웠던 온라인 인터넷 실명제 논란을 되돌아 보자. 소셜댓글이 일반화 된 요즘 관련 법은 사실상 사문화 돼 방통위에서 낮잠 자고 있지 않은가.
야당도 밉상이긴 마찬가지다. 그들이 지적하는 ‘정치적 반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라는 주장도 곰팡내 나는 낡은 수사로 느껴진다. SNS 이용자들에게 물어보라. 정부의 눈이 무서워 할말을 못하는지.
중동의 ‘쟈스민 혁명’ 과정에서 터져 나온 시민들의 SNS 활동은 서슬이 시퍼런 독재정권의 탄압에도 개의치 않았다. 야당은 이렇다 할 대안도 없이 ‘정치적 꼼수’라고 몰아붙이기만 하고 있다. SNS가 무조건 야당에 유리한 기제가 아님을 야당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번 일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SNS의 긍정적인 면, 생산적인 면을 키우고 가꿀 생각은 왜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요즘처럼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된 적은 없었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될수록 그 사회는 더 건강해 진다. 실제로 SNS는 숙의민주주의의 훌륭한 수단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활용여하에 따라 건강한 공론장이 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냥 두면 위험한, 그래서 규제해야 할 그런 존재만은 아니란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경작면적을 예측하지 못해 해마다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배추나 무의 경우도 재배자들이 SNS를 통해 사전에 재배 규모를 조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SNS의 네트워크 구조를 활용해 대규모 질병을 미리 예측해 내는 모델들이 개발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분야는 학문적인 개발 여지와 함께 우리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하버드 의대 의사이자 사회과학자인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소셜 네트워크를 ‘사회적 자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셜네트워크는 근본적으로 선함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세계가 현재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연결이라 생각한다.” 그의 이 말을 방통위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백재현 기자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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