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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막걸리 전문 레스토랑 '세발자전거'

시계아이콘03분 42초 소요

그래, 촌놈 맛좀볼래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술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고등학교 때부터 비교적 최근까지도 잘 찾지 않는 술이 있었다. 바로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탁주(濁酒) 얘기다. 소주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술 중 하나로 꼽히지만, 바로 이같은 대중성 때문에 '머리 큰' 후에는 오히려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양껏 먹고 나면 온 몸 모든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곡주' 냄새는 막걸리를 '기피 대상 1호' 술 리스트에 올려놓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됐던 것 같다.(술 좀 먹는 사람이라면 막걸리 술 자리가 파한 후 지하철 안에서 옆 사람의 눈총 좀 제법 받아봤을 거다) 하지만 '웰빙'과 '불황',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술의 영역에서도 피할 수 없는 두 트렌드다. '못 사는 서민들이나 먹는 술'로 치부되던 막걸리는 이제 건강을 위해 '음용'되는 대표적 건강 음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대형 마트는 물론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만 가도 막걸리 여러 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막걸리 종류는 열 손가락 내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도 모두 중간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 대량 생산한 것들. 서울 시내에 널린 주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도시 사람들은 언제나 달짝지근한 맛과 걸쭉한 농도의 균일화된 막걸리만을 맛보고 살지만,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막걸리는 진정 다양한 재료와 풍미를 가진 술이다. 지방색도 뚜렷하다. 경상도 막걸리가 신 맛이 강하다면, 전라도 막걸리는 단 맛이 특성이다.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맛의 미묘한 변주도 가능하다. 멥쌀이 다르고 찹쌀이 다르며, 발효된 누룩의 상태에 따라 단맛ㆍ신맛ㆍ쓴맛 등 다양한 맛을 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막걸리 전부에 적용되는 진리다. 막걸리와 청주는 그 해 수확한 햅쌀로 만들어야 비로소 최고의 맛을 낸다는 것. 바야흐로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는 제대로 된 막걸리를 먹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세발자전거'는 서울에서 한국의 여러 지역 막걸리와 전통주를 가장 많이 만나 볼 수 있는 막걸리 전문 레스토랑으로, 국내산 농ㆍ수ㆍ축산물만을 사용해 이에 어울리는 한식ㆍ중식ㆍ양식 등 요리급 안주를 곁들인다. 실제 '세발자전거' 메뉴에 오른 막걸리들은 어지간한 막걸리 마니아가 아니라면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다. 그럴만도 하다. 올 7월부터 '세발자전거'의 오너가 된 백웅재(39) 씨는 새롭고 특이한 맛과 향의 막걸리를 발굴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도는 수고를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와인 리스트 뺨치는 방대한 막걸리 리스트를 보고 살짝 당황했다. '팔도막걸리' 섹션에서는 6~8도 정도의 순한 열 가지 남짓한 팔도 막걸리들이 발견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여섯 잔을 연거푸 마셨다는 '주사(酒史)'의 '단양 소백산 막걸리', 강원도 평창 메밀이 10% 함유된 '봉평 메밀 막걸리', 500년 역사의 산성 누룩으로 빚는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단맛이 없고 드라이한 누룩향이 두드러지는 '정읍 송명섭 생막걸리' 등 지역도 맛도 생김새도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이 모든 막걸리들이 만원 미만의 착한 가격이라는 것은 최고의 장점이다. 고난도ㆍ고가의 막걸리를 원한다면 팔도 프리미엄 막걸리 섹션을 펼치면 된다. ('고가'라고 하지만 모두 3만 원 미만이다). 탄산 느낌이 강한 '복순도가 손막걸리', 신 맛과 탄산 맛이 강한 요거트 느낌의 '자희향 탁주', 벌꿀이 들어있어 달달하고 은은한 '장성 사미인주' 등이 있다. 여기에 백 대표의 '발품'의 산물로 매달 '루키'를 소개하는 이달의 막걸리 섹션과 문배주, 이강주 등 팔도 증류주 코너도 있다. 또한 매주 토요일에는 인당 2만원의 가격으로 팔도 막걸리와 여러 안주를 무한정 먹을 수 있는 '막걸리 파티'도 열린다.

다양한 막걸리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씹을 거리다. 기자는 '세발자전거'에서 '친환경 파보쌈'과 '새우겨자냉채' 그리고 '해물부추전' 등 세 가지 요리 안주를 곁들였다. 전반적으로 음식의 간은 안주보다는 약하고 식사보다는 조금 센 정도였다. 단백질과 탄수화물 덩어리인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일품' 요리들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특히 항생제를 먹이지 않은 국산 돼지 고기의 앞다리살과 삼겹살에 친환경 대파를 쓴 '친환경 파보쌈'은 '세발자전거'의 셰프 추천 요리로, 한끼 식사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겉은 거칠지만 속은 한없이 부드러운 돼지 수육과 올리브 오일에 볶아낸 쌉쌀한 파의 밸런스가 좋았다. 공들여 낸 안주와 함께 한 잔 두 잔, 여러 종류의 막걸리가 목을 타고 벌컥벌컥 섞인다. 천국이 따로 없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말 그대로 '세발자전거'는 '막걸리 천국'인 것을 말이다.


우리집은 // '세발자전거' 백웅재 대표


“한국에만 무려 2000여 개가 넘는 종류의 막걸리가 있지만, 정작 서울에서 마실 수 있는 것은 열 손가락을 꼽습니다. 다소 고생스럽기는 해도 직접 ‘발품’ 팔아 각 지역 특색이 고스란히 담긴 막걸리를 저 같은 도시 ’촌놈’에게 전파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즐거워요.”


2/6호선 합정역 근처 막걸리 바 ‘세발자전거’를 운영하는 사람은 인심 좋아 보이는 외모의 백웅재(39) 씨다. 2009년 문을 연 ‘세발자전거’의 단골 손님이자 ‘허수자(虛手者, 손에 바둑 돌을 쥐지 않으면 절대 바둑에서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명의 음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던 그는 올 7월 월급쟁이를 하면서 모은 돈과 각종 은행 대출들로 ‘세발자전거’의 사장으로 변신했다.


엄연히 손님과 사장의 역할은 다르다. 하지만 “주인이 바뀌니 음식 맛이 바뀌고 가격이 올랐다”는 말을 듣기 싫은 그는 ‘세발자전거’의 전부를 자신이 손님일 때와 동일한 수준으로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그는 ‘세발자전거’를 ‘인디 컨셉트’의 막걸리 바로 칭한다. 대략 30여 가지 이상의 막걸리와 전통주를 판매하는 ‘세발자전거’에서 그는 아무리 인기가 좋은 막걸리라도 대형 마트에 들어가는 순간 이를 과감히 메뉴에서 퇴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발자전거’는 인기가 높으면 결국 퇴장해야만 하는 재미있는 규칙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주당’ 백씨의 고집 덕택에 우리들은 막걸리의 다양한 세계를 편하게 경험할 수 있다.


알고 먹읍시다 // 막걸리


막걸리는 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술이다.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을 찐 후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며, 탁주(濁酒) ·농주(農酒) ·재주(滓酒) ·회주(灰酒)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밥에 누룩을 섞어 빚은 술을 오지그릇 위에 놓고 체에 부어 거르면 뿌연 막걸리가 되며, 발효액에 용수(싸리나 대쪽으로 결어 만든 도구)를 박아 떠낸 맑은 부분이 청주(淸酒)다. 또한 체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밥풀이 담긴 채 뜬 것을 동동주라 부른다. 막걸리 도수는 약 6~7도로 알코올 성분은 여타 술에 비해 낮다.


막걸리와 어울리는 안주로 대개 ‘지글지글’ 전이나 두부김치 등의 음식을 떠올리지만, 뜻밖에도 최고 궁합의 안주는 ‘동종’의 젖산 발효 음식인 치즈다. 막걸리에는 라이신, 메티오닌 등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B, 비타민 C가 여느 주류에 비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치즈는 쇠고기의 200배에 달하는 칼슘과 쇠고기의 1.5배 단백질 덩어리다. 막걸리와 치즈만 먹어도 주요 영양소는 모두 섭취하는 셈이다.


쌀과 누룩이 주재료인 만큼 탄수화물 54%, 단백질 46%로 구성된 막걸리는 지방은 전혀 없다. 우리 몸에 쌓이는 잔여 칼로리는 10% 미만이며, 소주 한 잔(45g)의 칼로리가 64kcal인데 반해 막걸리 한 잔(150g)은 69kcal에 불과하다. 영양 성분도 뛰어나다. 유기산이 0.8% 함유된 막걸리는 갈증 해소에 효과적이며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 또한 발효 과정에서 증식한 효모균 체는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의 함량이 높고 영양이 풍부하다. 정리하자. 막걸리는 가히 웰빙 음료의 대표주자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는 모두 적당히 마셨을 때의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말것.





태상준 기자 birdcage@
사진_이준구(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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