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말도 마세요. 직원들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금융경찰' 금융감독원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달만 해도 벌써 2급부터 4급에 걸쳐 총 18명이 사표를 냈고, 이달 중 퇴직 의사를 밝힌 직원도 10명이 넘는다. 자연 퇴직자가 평소 월 1~2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직원들의 금감원 탈출 이유는 이달 30일부터 시행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서 금감원 직원의 재취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4급 이상 직원들은 퇴직이후 퇴직 전 5년간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회사에 2년간 재취업이 금지된다. 그 대상도 2급(부국장) 이상에서 4급(선임조사역)까지 확대된다. 금감원 직원 1550명 중 약 1200명이 재취업 제한 대상이 되는 셈이다.
당연히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30대부터 이직의 자유를 제한받게 되는 4급 선임들의 반발이 강하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로 금감원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이기는 쉽지 않다.
대규모 '탈출'은 그간 이런 불만이 쌓여 온 결과로 해석된다. 금감원 노조에서 재취업 제한을 막지 못했다며 간부진의 퇴임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자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서명했을 정도다.
금감원 직원들의 불만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감원에 설립될 금융소비자보호원(이하 금소원)과 관련,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한다는 것. 금감원 내에서는 금소원이 설립되면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권이 이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천천히 업계 의견을 들어 논의하자"는 금감원과 달리, 금융위는 내달 초 회의를 열어 금소원 설립안을 밀어부칠 계획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며 냉소적이다. 반면 금감원 직원들은 "오죽하면 우리도 이러겠느냐.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감독당국 고유의 권한인 검사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가 동시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항변이다.
그러나 이런 광경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치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경제 위기상황을 겪는 와중에 금융시장 감시를 맡고 있는 금융당국이 흔들린다는 건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금융은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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