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는 가정, 직원이 없는 회사, 국민이 없는 국가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최근 1인 세대, 1인 기업이라는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형태는 사람이 가정의 체제나 회사의 조직보다 중요하다는 개념에서 출발된 것이다. 사람이 있기에 가정도, 기업도, 국가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경영은 사람 경영이라고 한다. 이 말도 진부해진 지 오래다. 경영자라면 당연히 그 조직의 이익을 추구한다. 한때 공기업이나 지자체 그리고 정부기관도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CEO 대통령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국민 대다수가 이익 추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고,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자체의 조직에 본부장이라는 직책이 생겼다. 기업과 같이 활동적으로 일하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공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무리한 행보를 하게 되고, 민간 기업과 경쟁함으로써 공익의 추구는 뒷전이 되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이익은 손해의 반대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잘 곱씹으면 유의어임을 알 수 있다. 아주 작은 조직인 가정에서도 이익에 치중하다 보면 누군가 손해보는 사람이 생긴다. 기업과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효율과 평등은 서로 거래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효율을 내기 위해 평등은 유보된다. 국가 경영의 고민도 여기서 맴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대로부터 국가 형태가 나타난 이후 모든 국가는 모든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지향해 왔다. 그러나 1만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지향점에 도달한 국가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못사는 나라도 없다.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그 이상(理想)과는 반대로 세계경제를 침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거의 전 세계가 이익의 추구라는 관점에서만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익은 사람의 가치를 전혀 대변하지 않는 숫자다. 이것을 효용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마찬가지다. 성경에, 집안에 고기가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가난한 가운데 화목한 것이 더 낫다는 말씀이 있다. 사람의 가치는 빈부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본다. 분노의 시대라고도 말한다.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임박하다는 신문기사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또 손해를 봐야 하는가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그러한 방식을 통해 기업들이 이익을 내게 되면 국민들은 과연 행복해지는 것일까. 숫자를 위해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국가는 최대 다수의 국민을 최대로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벤담의 공리주의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시점에서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는 이익이 아닌 다른 잣대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해방 이후 국가의 이익 추구가 진정한 선이라고 믿고 살아온 국민들에게 무슨 말인가는 해줘야 한다. 국가의 이익 추구가 결국 나의 손해였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한 국가를 향한 사랑을 지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서구사회에서 불어오는 경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가 우리나라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업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이제 우리는 사람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람을 향한 모든 이념은 기계와 제품과 숫자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아무리 이 세계의 경제가 다시 회복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념의 변화 없이는 어떤 국가도 국민을 품고 간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숫자에서 마음으로, 조직에서 사람으로 이익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행복 경영이다. 그래야 사람이 산다.
윤주선 한호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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