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산업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지난 2007년 3위에서 올해 19위로 현저하게 밀려났다는 평가 결과가 어제 발표됐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조사회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라는 민간 단체의 의뢰로 조사한 결과다. 미국(1위), 핀란드(2위)에는 물론 싱가포르(3위), 대만(13위), 일본(16위) 등 아시아 경쟁국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15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표한 정보통신기술발전지수(IDI) 순위에서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세계 3위에서 올해 1위로 올라섰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는 국민적 자긍심에 근거가 있음이 재확인된 지 불과 열이틀 만에 그 자긍심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위의 두 평가에서 19위와 1위로 차이가 크게 나는 순위를 받은 이유를 들여다보면 납득이 간다.
ITU의 '정보통신기술발전지수'는 인터넷 접속가구 비율, 브로드밴드 가입자 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 등 주로 IT 소비 측면의 실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반면 BSA의 'IT 산업 경쟁력 지수'는 연구개발, 지원정책, 인적자원 등 IT 생산 측면의 실력을 측정한 결과다. 우리나라는 IT 소비 측면에서는 세계 1위이지만 IT 생산 측면에서는 세계 19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IT를 수용하는 데는 능하지만 IT를 창조하는 데는 그만큼 능하지 못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사실 이런 괴리는 우리가 이미 감지해온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IT를 산업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혁신의 기회로 삼는 분위기가 우리에게 있었다. 그때만 해도 IT를 열심히 익히고 벤처에 뛰어들면서 IT를 통해 기성 세대와 기존 체제에 도전해 보려는 태도가 젊은이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사이 우리 IT 산업은 소수의 대기업들에 포섭돼 버렸고, 젊은이들은 IT를 통한 혁신을 더 이상 꿈꾸지 않고 그저 IT 소비를 즐기기만 한다.
BSA의 IT 산업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순위가 19위에 이르도록 해마다 떨어진 기간은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와 꼭 겹친다. 그동안 우리의 IT 생태계와 정부의 IT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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