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혼미에 빠진 가운데 어제 낭보가 날아들었다. 삼성전자의 세계 최초 20나노급 D램 반도체 양산 소식이다. 20나노급 공정은 반도체 회로선 폭이 머리카락 굵기의 4000분의 1 정도로 얇은 것이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나노미터 숫자가 작아질수록 칩 크기를 줄임으로써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수가 늘어나 제품 생산비용을 낮춘다. 20나노급 D램은 30나노급보다 생산성이 50% 정도 높아진다니 삼성으로선 그만큼 경쟁업체보다 유리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경제상황이 어려울수록 기술력을 앞세운 우위 제품의 개발만이 위기 탈피의 무기라는 의지가 읽힌다.
메모리반도체는 한국과 일본이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는 대표 업종이다. 20나노급 D램 양산도 그랬다. 올 7월부터 25나노급 D램을 양산하겠다던 일본 엘피다의 경우 시제품만 내놓았을 뿐이다. 한ㆍ일 간 주도권 경쟁에서 삼성이 승리한 것은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연구개발 덕분이다. 올해 안에 20나노급 양산에 가세하겠다는 하이닉스반도체도 엘피다보다 먼저 양산에 들어가면 한국이 전통적인 메모리반도체 강국 일본을 확실히 누르게 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지금 D램 및 낸드플래시 가격 폭락과 PC 수요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 여파로 대만 업체들은 감산에 들어갔으며, 엘피다도 생산라인 가동률을 낮추면서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금 마냥 샴페인을 터뜨릴 한가한 때가 아니며, 차세대 제품 개발과 양산 못지않게 시장수요 창출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방진복을 입은 젊은 남녀 직원들로부터 1호 반도체 웨이퍼를 받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직원들의 노력으로 기술 리더십을 지킬 수 있었지만 앞으로 더욱 거세질 반도체 업계발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승장구하던 휴대폰 사업에서 스마트폰 아이폰을 들고 나온 애플의 도전에 고전한 삼성이 반도체라고 계속 우위를 지키리란 보장은 없다. 애플과의 특허 소송, 구글의 모토로라 휴대폰 부문 인수에서 보듯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의 지각변동은 삼성에 많은 숙제를 던지고 있다. 20나노 D램 양산 쾌거를 축하하는 동시에 삼성의 지속적인 도전과 변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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