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환율이 가파르게 뛰어오르고 있다. 이달 들어 어제까지 14거래일 중 10일에 걸쳐 모두 114원 올라 달러당 1180원에 이르렀다. 오늘도 오전 한때 1195원까지 올랐다. 지난 8월 초의 연중 최저점에 비하면 2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12% 이상 오른 셈이다.
올 들어 7월까지만 해도 하락세를 보이며 1000원 미만의 세 자릿수 환율 시대를 예고하던 분위기와는 180도 반전된 상황이다. 이는 외환시장을 좌우하는 이슈가 미국의 위기(성장둔화와 재정파탄)에서 유럽의 위기(과다채무와 국가부도)로 전환된 탓이다. 그 과정에서 달러화 매도세가 매수세로 돌아섰고, 상대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원화 등 신흥국 통화가 8월 이후 보유축소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 뒤로 유럽의 위기가 급박해지며 생겨난 유럽 금융권의 신용경색이 현금 유동성 확보 경쟁으로 이어져 달러화 회수 소동이 벌어진 것이 원화 환율 급등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경제위기의 시기에 예외 없이 나타나는 안전희구 움직임이 구체적 계기와 상황에 따라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며 환율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것이다. 문제는 환율의 등락이 과도해져 경제주체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환율 급등세는 바로 그러한 오버슈팅의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 수출을 많이 하는 일부 대기업들은 이를 은근히 즐기고 있겠지만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하고 내수에 기대야 하는 중소기업들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의 억제 목표를 넘어선 물가가 환율 급등의 충격으로 더욱 걷잡을 수 없게 치솟을 가능성도 높다.
최근의 환율 급등세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보다 더 가파르다는 점에서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보니 한국을 현금자동인출기(ATM) 삼아 달러화를 빼나가는 세력이 누구냐는 분석 내지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유럽계 자금의 이탈이 두드러지고, 케이맨 군도를 비롯한 조세회피지역의 자금도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10월 이후에는 외국자금 이탈이 진정되면서 환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리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외환당국은 시장 흐름을 면밀히 추적하되 무리한 개입보다 유럽 재정위기 장기화에 대비해 외환곳간 단속에 치중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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