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로스앤젤레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리플리컨트(복제 인간)가 노예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폭동을 일으키자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특수 경찰대가 뒤를 쫓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인간과 복제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 고전적인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시작이다. 복제 인간은 인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들은 인간을 능가하는 힘을 지니며 나아가 미움, 사랑, 분노 등의 감정까지도 갖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뇌 이식을 통해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완벽한 인간의 삶을 살기도 한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들이다. 실현 불가능한 일로만 생각했던 미래 사회의 모습이 최근 우리 삶에 바짝 다가선 느낌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었던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영화 속에 펼쳐진 세상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미국 IBM이 만든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이 TV 퀴즈쇼에 출연, 인터넷이 차단된 상태에서 자신의 인공지능으로 퀴즈의 달인 2명을 이기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74연승 기록과 325만달러의 누적 상금 기록을 각각 보유한 퀴즈의 달인을 보기 좋게 물리친 것이다. 과학자들은 2020년대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지적 능력에 근접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성적 판단이 가능한 컴퓨터도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간의 언어로 생각하는 기계는 이미 부분적으로 현실화됐다고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는 인공의 존재,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인공의 존재와 마주하게 될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데카르트가 언급했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을 이제 그들과 공유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세상이 오면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그들과 공존할 것인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인간만이 지니는 능력은 무엇인가. 과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야말로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래서 특히 교육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과학자는 창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어떤 과학자는 미래사회일수록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인본주의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2011 교육과정이 지난달 9일 고시됐다. 이제 곧 새로운 교과서 개발도 이뤄질 것이다. 최근 국정 감사 자료에 따르면 학교현장의 EBS 교재 사용률은 50%를 넘고,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는 70% 이상이라고 한다. 교과서를 밀어내고 EBS 교재 내용을 아예 시험 범위로 정해 시험을 치르는 학교조차 있다. '사교육 줄이기'를 위해 강조한 EBS 강의가 오히려 학교 교실을 점령해 버린 형국이다. 정부는 최근 국정 교과서를 검정 교과서로 전환하는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EBS 강의의 수능 70% 연계 방안을 통해 EBS 교재를 국정 교과서 못지않은 위치로 끌어올려버렸다.
EBS 강의는 공교육을 보완하기 위해 활용해야 할 교육 방식이지 학교 교육을 대체할 수는 없다. 교사의 수업을 인터넷 강의가 대신하고 교사와 학생이 교환해야 할 살아 있는 눈빛을 컴퓨터 화면이 가로막는다면 새로운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창의적인 교육이 이뤄질 리 만무할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문제풀이를 통해 과학자들이 고대하는 창의적인 교육,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의 능력,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능력을 위해 공교육을 활성화하는 것, 그러한 교육정책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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