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선 지지도 부동의 1위인 박근혜 전 대표를 연일 타깃으로 삼는 것이 그가 선택한 방법이다.
정 전 대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전 특임장관과 함께 범친이계 대권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대선후보로서의 대중적인 인지도나 존재감에선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박근혜를 타깃으로 삼는 그의 이런 행보는 '친이계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보수층 지지를 얻는다'는 두 마리 토끼를 얻으려는 셈법이란 분석이다.
정 전 대표는 지난달 아산나눔재단 설립에 2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며 대중적 지지세를 끌어모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것이 지지율 도약의 발판이 되긴 부족했다. 사재 출연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 전 대표는 여전히 여권 대선주자 중 3위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박근혜 30.3%-김문수 5.2%-정몽준 4.0%, 8월 4주차 리얼미터 조사) 그가 대권 전략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아이콘에서 '박근혜 때리기'로 전격 수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4일 정 전 대표의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 출간기념회 자리에서도 이같은 행보는 이어졌다. 정 전 대표는 "박 전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정치인이므로 경험했던 사례를 최소한 말하는 게 도리고, 국민도 알면 참고가 된다고 본다"며 비화를 하나둘씩 꺼냈다.
"박 전 대표가 먼저 경기장에 와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이었다. 경기 시작 전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치자 박 전 대표는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다시 내게 항의했다" (2002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축구경기 개최를 합의한 뒤 그해 9월 남북 축구경기 당일을 떠올리며)
"화를 내는 박 전 대표의 전화 목소리가 하도 커서 같은 방에 있던 의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아주 민망했다. 마치 '아랫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투로 들렸다" (지난 2009년 9월 당 대표 취임 이후 박 전 대표와의 회동 결과 브리핑을 둘러싼 마찰과 당 세종시특위 구성 과정을 회상하며)
'박근혜 대세론'를 비토하는 정 전 대표의 전략은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정치인 인기는 목욕탕 수증기와 비슷하다" "대세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 이후 공세 수위는 더 높아졌다. 박 전 대표가 "(오세훈 전 시장이) 시장직까지 걸 문제는 아니었다"며 쓴소리를 하자 "정말 너무 한가하신 말씀"이라고 날을 세웠다. 박 전 대표의 포린어페어스 외교·안보 기고문에 대해 대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 전 대표의 이런 전략이 얼마나 파급력을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 대권주자의 승부수가 '콘텐츠'가 아닌 '네거티브'라는 점에 당내 비판이 만만치 않다. 친박계 핵심 의원은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니 초조하고 급한 나머지 박 전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이것이 당 대표까지 지낸 6선 의원이 할 행동인가"라며 "정책과 비전으로 세일즈해야지 같은 당 대선주자를 비판하는 건 본인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 살 차이인 정 전 대표와(1951년생)와 박 전 대표(1952년생)는 서울 장충초교 20회 동창이다. 정몽준은 재벌의 아들이고, 박근혜는 대통령의 딸이다. 당 대표를 지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대선 길목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상대를 쓰러뜨려야 승리할 수 있는 라이벌이기도 하다.
심나영 기자 s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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