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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평창-2018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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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평창-2018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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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려나. 스키점프대 위쪽 차가운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잠시 후면 개막식. 다시 가슴이 뛴다. 그날의 드라마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7년 전 - 장마가 한풀 꺾인 7월 그날 밤. 모두들 가슴 졸이고 있었지. 거실 소파에서, 생맥주 잔을 기울이며, 알펜시아 잔디밭 응원석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갈라진 목소리의 영어로 "올림픽 정신을 세계와 나누겠다"고 호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두 눈치채고 있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어. 천기누설은 아닐까, 부정을 타지는 않을까 하면서. 하지만 알고 있었지. 믿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거야. 10년을 기다렸다, 3번의 실패는 없다, 수없는 물방울은 바위를 뚫는다.


0시18분 드디어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지. 그가 입을 열기까지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몰라. "평창!" 순간 머리가 멍해졌어.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뭐라 소리쳤지. 그때 아마도 한반도가 들썩거렸을 거야.

돌아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어.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동계스포츠라면 내세울 게 별로 없는 나라에서, 부자나라 잔치라는 동계올림픽을 열겠다고 나선 것부터 그랬지. 그것도 2번이나 실패했잖아. 3연속 도전해서 성공한 것은 처음이었지. 게다가 1차 투표에서 역대 최대인 63표를 얻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불가사의해. 한국은 그래서 세계 6번째로 '스포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의 반열에 올랐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재수, 삼수를 예사롭게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닐 거야. 누구는 한국인 특유의 1등주의라 했고, 지고는 못 견디는 오기라 말하기도 했지. 그렇지만 국민적 염원, 열정, 진정성의 결과라는 해석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이 있지.


더반 현장에서 감격하던 유치단의 모습이 생생하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모글 스키 스타 토비 도슨을 끌어안으며 기뻐했지. 그 옆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나이도 잊은 채 눈물을 글썽였고.


그렇지만 유치단의 면면은 조금 어색했어. 이건희, 박용성, 조양호….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이 대통령, 장관과 나란히 앉았는데 그때 국내에서는 '재벌 때리기'가 한창이었잖아? 정치권에서는 '재벌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별렀고. 그런 그들이 스포츠로 하나된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지.


사실 재벌은 때려서 풀 문제는 아니야. 뉴턴의 제2운동법칙처럼 물량이 커지면 때려도 별 효과가 없는 법. 스스로 달라지는 게 최선인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 뒤로 재벌 참 많이 변했지. 지금 재벌 욕하는 사람 어디 있나.


그날 평창 알펜시아에서의 응원단 모습도 묘했어. 홍준표, 김진표, 박근혜, 정몽준, 황우여….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어울려 응원전을 펼쳤지. 유치 성공에 여야 없이 펄쩍 뛰면서 만세를 부르는 모습은 참으로 진풍경이었어. 그러나 그때뿐. 이듬해 총선과 대선에서의 진흙탕 싸움은 가관이었지. 작년 대선 때도 다를 것 없었어.


아, 개막식이다. 6만 관중의 환호가 알펜시아올림픽스타디움을 흔든다. 한국 대표팀이다. 저기, 낯익은 얼굴이 손을 흔드네. 숱한 '연아키즈'를 탄생시킨 피겨 감독 김연아!


'더반의 용사'들도 다시 만났군. 팔순을 바라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뭔가 귀엣말을 건네고, 저편에는 김, 박, 손, 홍, 이, 정…. 한 시대를 주름잡던 정객들이 함께 박수치고 있네. 지나고 보면 4년, 5년짜리 권력은 아무것도 아닌데. 저 사람들, 그때는 왜 그렇게 싸워댔는지…. 아, 함박눈이 쏟아지는구나. 16일간의 열전을 축하하는 서설인가.






박명훈 주필 pmho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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