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예정된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가 아니다. 언제 무엇이 나비의 날개가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휘저을지 모른다.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이 그런 경우다. 4ㆍ27 재보선은 한나라당의 뒤통수를 쳤고 당의 권력지도를 바꿔 놓았다. 이는 경고의 메시지가 되어 이명박 정부에 날아갔다. 급기야 이 대통령은 개각 구상을 바꿨다. 그 과정의 끝에 '박재완 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등장했다.
5ㆍ7 개각 명단이 나올 때까지 재정부 장관 후보에 여러 사람의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박재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노동부 장관을 맡은 지 9개월에 불과한 데다 후보자들의 이력이 화려해 누구도 그를 경쟁자로 떠올리지 않았다. 박 장관은 역설적으로 '4ㆍ27 재보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가 기대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역시 인생은 정해진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가 아니다.
박재완 경제팀이 모습을 드러낸 후 세상은 '깜짝 인사'라 평했다. 박 후보자도 "청와대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할 정도였다. 재정부 주변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의 놀라움은 단순한 의외성의 표현이 아니다. 복합적이다. 언론을 통해 '성실하게 일하는 스타일로 안다' '탈권위적이서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맥 빠지는 표현이다. 경제수장으로서의 능력이나 무게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실하고 소탈하다'는 식의 하나 마나 한 멘트성 발언이다.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깜짝 인사가 나온 뒤 관가 뒤쪽에서는 '최악의 인사'라는 말이 돌았다. 재정부 공무원들의 눈에는 능히 그럴 만하다. 박 후보자가 금융을 아나, 세금을 아나, 관료조직을 움직여 봤나. 물망에 올랐던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 윤진식 한나라당 의원, 김석동 금융위원장,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면면을 떠올리면 그런 반응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그들은 재정부에서 뼈가 굵고 출세한 '패밀리'다. 그런데 왜 옛 재무부사무관 근무경력 2년이 전부인 박재완인가.
박 후보자는 섭섭할 것 없다. 수십년간 벌어져 온 일이다. 교수 출신이나 다른 곳에서 장관으로 오면 자동응답기처럼 '금융, 세제를 아나' '관료집단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가'가 터져 나왔다. 왜 재정부는 다른 부처에 없는 유별난 시비를 거는 것일까.
요즘의 저축은행 사태에 답이 있다.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의 공생관계가 그것이다. 금감원에 금피아(금감원+마피아)가 있다면 재정부에는 전통의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가 있다. 현직은 퇴임자의 뒷자리를 봐주고 선배는 회전문을 돌며 후배를 챙긴다. 금융기관 감사 정도가 아니다. 장관에서 산하 단체장, 금융기관장 자리를 휘감고 있다. 얼마 전 국회 '저축은행 청문회'에 나란히 앉아 있던 전ㆍ현직 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금감원장이 누구였나.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그 곳의 책임자가 되고, 다시 장관으로 돌아오는 모피아 패밀리다.
MB 경제팀장을 기다리는 경제 현안은 만만한 게 없다. 물가, 일자리에서 지역갈등에 이르기까지 누가 팀장이 돼도 맞서야 할 과제다. 박 후보자도 그렇다. 그러나 박 후보자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다. 모피아를 치는 것이다. 그는 모피아 패밀리가 아니다. 대신 교수, 국회의원, 시민단체와 청와대를 두루 거쳤다. 행정의 전문가다. 공기업을 개혁했다. 모피아의 질긴 고리를 끊을 최적임자다. 때마침 정권 후반 인사철이다. 모피아에 회심의 칼을 꽂는다면 그는 '최악의 인사'라는 저주를 뒤집고 최고의 경제수장으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모피아에도 인생은 예정된 길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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