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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 집에서 쫓겨난 아들

시계아이콘01분 43초 소요

결혼 생각 없어 반강제 독립
전세난에 집 구하기도 힘들어


[박명훈칼럼] 집에서 쫓겨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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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들이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갔다. 짐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 컴퓨터와 청바지 몇 벌, 운동화 몇 켤레 정도다. 가출도, 지방근무 발령이 난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어진 부모와의 동거를 청산하고 주거독립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아들 스스로 내린 결정은 아니다. '나가라'는 아내의 집요한 압박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아들을 내쫓은 어머니라니, 이상하게 비쳐질 수 있겠지만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겨도 결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직장이 있고, 오랜 여자 친구도 있는데 그랬다. 결혼을 거부할 뚜렷한 이유나 명쾌한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내가 아들을 집에서 축출키로 작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에게 편하게 얹혀살기 때문에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도 맞장구를 쳤다. 밤 늦게 들어와도 잠잘 수 있는 공간, 밥과 빨래를 아무런 대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집이 결혼의 최대 장애물이라는 게 아내의 판단이다. 고생해봐야 결혼한다는 논리다. '꼭 결혼해야 하는가' 하는 아들의 반론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적령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아내에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인생의 당위이자 섭리다.

결혼을 둘러싼 모자간의 현격한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집을 나와 홀로 방에 앉아 있으면 결혼이 절박해질까. 아들은 처음 '나가라'는 말에 뜨악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달라졌다. 다소의 비용을 치르더라도 속박에서 벗어나 얻게 될 자유에 가슴이 부풀기 시작했다. '불편'과 '자유' 중에 무엇이 득세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결과가 어떻든 독립이 결혼으로 이어지리라는 아내의 기대가 쉽게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아들의 집을 구하면서 동병상련의 동지를 만났다. 중개업소 대표가 '우리 집도 하나뿐인 아들이 얼마 전 집을 나갔다'며 부모 속을 썩이는 '웬수'가 주위에 하나둘이 아니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자식의 결혼과 독립의 문제는 그렇게 사회적 이슈로 확장됐다.


월급이 뻔한 아들이 처지에 맞는 집을 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최소한의 기준은 출퇴근이 쉬운 교통환경에 월세 50만원 이하. 웬만한 오피스텔은 월세 상한선을 크게 넘어섰다. 허름한 원룸으로 타깃을 정하고 보증금을 올려서라도 50만원 한도를 고수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전월세 파동 속에 칼자루를 쥔 것은 집주인. 저금리 시대에 누구나 보증금보다 월세를 챙기려 했다. 어렵게 3곳의 후보가 나타난 것은 중개업소의 뛰어난 입담 덕이었다.


기대도 잠시, 곧 좌절의 쓴맛을 봐야 했다. 1차, 2차 후보 모두 계약 직전에 딱지를 놓는 게 아닌가. 월세를 더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몇 시간 전의 구두 약속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3번째 집주인은 뛰어난 임기응변 실력을 발휘했다. 관리비가 비싸다고 하자 즉석에서 절반으로 뚝 깎아 주었다. 감격도 잠깐, 줄어든 관리비를 월세에 고스란히 얹은 사실을 발견한 것은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서다. 조삼모사의 원숭이 대접을 받은 꼴이다. 집을 구하기 어려울수록 힘없는 전월세입자들은 봉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집안의 소소한 얘기를 꺼낸 것은 만혼, 저출산, 주거형태 변화, 전월세 대란 등 요즘의 사회적 이슈를 체감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저출산, 당사자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쉽게 풀릴까. 작은 집, 세상이 변했다. 더 많이 지어야 한다. 전월세 대란, 집주인의 위세가 등등할 때는 어떤 대책도 약효가 없다.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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