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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경계'에 실패한 MB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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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경계'에 실패한 MB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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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명훈 주필] 졸면 죽는다. 흔들리는 나뭇잎에도 가슴이 철렁한다. 눈을 부릅뜬다. 바람이었나. 잠을 토막 내 전선을 지키는 초병의 밤은 그래서 짙고 길다. 그들이 밤을 견뎌내는 힘은 무엇인가. 졸면 죽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니다. 전우가, 부대가, 두고 온 가족이 죽는다. 전투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는 이유다.


졸면 죽는 것은 전장의 병사만이 아니다. 경제현장도 그렇다. 경계의 성패는 생존과 곧바로 이어진다. 경계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긴장의 끈이다. 위기를 알아채는 능력이며 미래를 읽는 눈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외환위기, 스마트 돌풍에 무너진 기업들. 모두 실패한 경계의 희생자다.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경제대통령'을 내세워 출범한 이명박(MB) 정부의 딜레마이자 'MB노믹스'의 최대 위기다. MB경제 추락의 증거는 지난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1년 경제전망' 수정치에 그대로 담겨 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3.5%에서 3.9%로 솟았다. 경상수지 흑자액은 180억달러에서 110억달러로 뚝 떨어졌다. 실업률은 3.5%에서 3.6%로 올라갔다. 같은 날 통계청이 내놓은 청년실업률은 9.5%에 달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물가전망을 3.4%에서 4.5%로 높였다. 한은의 위기의식이 강렬하지 않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이 돈더미에 올랐고 국민소득은 2만달러를 돌파했는데 무슨 총체적 위기냐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실력인가. 진정 국민의 주머니 사정은 나아졌는가. 고환율과 저금리가 거품이 되어 실적을 부풀렸고 양극화의 그늘은 한층 짙어졌다. 서민의 삶은 더 고단하고 힘겨워졌다.

도대체 4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보수적인 한은이 경제전망을 고쳐 썼을까. 중동의 재스민 혁명, 일본의 대지진, 원유 값의 상승…. 그것만으로 흔들리는 한국 경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시발은 훨씬 전부터다.


MB경제는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출발했다. 고통은 컸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했다. 빠른 위기 탈출로 경제팀은 우쭐해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에 들뜨면서 MB경제의 자부심은 정점에 이른 듯했다.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급기야 주위의 경고와 위기를 알리는 신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추락의 전주곡이었다.


불길한 징후는 잇따라 뚜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MB경제의 초병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봄철의 냉해가 가을의 배추 파동을 예고했으나 대책은 없었다. 전월세 파동을 알리는 경고음이 반년 이상 울려도 주무장관은 귀를 막았다. 세계가 인플레를 경고하고 전문가들은 물가 비상을 외쳤다. 하지만 정부와 한은은 '성장'을 곁눈질하면서 주춤거렸다. 뒤늦게 금리를 올렸지만 실기한 처방에 약발이 먹힐 리 없다.


구제역은 또 어떤가. 첫 신호를 외면한 대가는 엄청났다. 350여만마리를 차가운 땅에 묻으며 강산을 오염시켰고 축산 기반을 무너뜨렸으며 물가를 흔들었다. 분명한 경고를 무시하는 것은 소신이 아니다. 무지하거나 무책임할 따름이다.


경제팀은 대신 엉뚱한 곳에 힘을 쏟았다. 기업에 으름장을 놓고, 소득 없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체력을 소진했다. 부채가 쌓이고 물가가 뛰어도 '괜찮다'를 연발했다. 실패한 경계는 용서할 수 없다. 숱한 징후와 경고를 무시한 경제팀의 실패가 지금의 경제난국을 불렀다. 죽는 것은 서민경제다. 그러나 미안해 하는 기색도 없다. 남은 1년 반의 MB경제가 걱정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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