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아 '일감'을 찾으려는 대학생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300만~400만원, 많게는 1000만원 가까운 등록금을 어떻게든 마련해보려는 대학생들은 일의 성격이나 업무 강도 따위는 고려치 않는다. 그나마 일감을 찾기도 어렵다. 별 것 아닌 듯한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경쟁률이 높기 때문이다. 갈수록 무거워지는 등록금 부담에 대학생들이 '방학 노동자'로 내몰리고 있다.
4일 찾아간 서울 신촌의 거리. 골목골목마다 들어선 음식점과 편의점 유리창 곳곳에서 구인광고가 눈에 띄었다. 많은 상점 주인들은 "대학교가 방학을 맞이하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찾는 대학생들이 2~3배가량 늘었지만 방학 때만 근무한 뒤 그만 둬야 하는 대학생들보다는 휴학생이나 일반인을 더 선호한다"고 입을 모았다. 등록금 마련이 급박한 대학생들의 알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신촌 G편의점 점장인 김모씨는 "방학 시즌인 요즘에는 하루에 적어도 5~6명의 대학생들이 직접 찾아와 문의를 한다. 근무 시간이 밤 10시에서 다음날 아침 6시인데도 지원자가 많다"며 "다들 간절한 눈빛이라 간혹 미안함을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아르바이트 문의를 하면 일을 찾는 이유가 뭔지를 의례적으로 물어보는데, 대부분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한다"면서 "언제부터인가 구인전단만 붙이면 그날부터 당장 구직자가 몰린다"고 설명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신촌 S편의점을 지키고 있는 석모(23·남)씨는 지난해 3월 제대 후 곧바로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경우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컴퓨터 정보통신과 학생인 그는 올해 2학기 복학을 목표로 등록금을 벌고 있다. 그의 한 학기 등록금은 500여만원.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생활비도 스스로 벌어야 한다.
지난주까지 '야간조'로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근무하면서 받은 한 달 급여는 95만원. 그의 시급은 6400~6500원 선이다. 지금까지 생활비로 지출한 것을 제외하고 500만원을 저금했지만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내기에도 빠듯하다. 그나마 이번 주부터 주간 근무로 바뀌면서 시급은 4800~4900원으로 낮아졌다. 석씨는 "다음 학기에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학자금 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생들이 '짧은 시간 안에 수백만원을 벌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알바를 구하려는 대학생들에게 '다단계'의 마수가 뻗치는 것이다. 서울 K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인 정모(28·남)씨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다단계'에 손을 댄 경우다.
정씨는 "아는 동생의 손에 이끌려 갔다고 하지만 불법인 다단계 영업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면서도 "쉽사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일 리 없는 수익성 얘기를 들으면서도 당장의 돈 걱정이 앞서다보니 자꾸만 앉은 자리에서 머뭇거리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컨설턴트와 영업팀장, 판매왕까지 만난 다음 겨우 자리를 박차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대생들은 방학동안 일하면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바텐더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여성 종업원이 남성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접대하는 이른바 '토킹바(Talking Bar)'에 단기 취업하는 것이다. 한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에 구인광고를 낸 토킹바는 서울지역만 4220곳, 전국적으로 9337곳에 이른다. 이들이 내건 조건은 시급 2만원, 월급으로 따지면 300만원에서 최고 400만원까지다.
서울 소재 S대학에 재학 중인 최모(24·여)씨는 이런 광고를 보고 서울 마포구의 한 토킹바에 지난 주 알바생으로 취직했다. 최씨는 "막상 일하다보니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이상한 업종은 아닐 뿐더러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절반 이상이 대학생"이라며 "다들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은 부담스러워 모여든 친구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따금 접객을 요구하며 추근대는 손님들을 대할 때면 속상하고,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몸마저 힘들지만 과외보다 더 벌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라며 "두 달만 더 버티면 다시 복학하고 내년 시험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자신을 '마루타 실험'에 내맡기는 대학생들도 있다. 생물학적 동등성실험, 이른바 생동성실험에 자원해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다. 생동성 실험이란 현재 시중에서 파는 약과 성분이 동일한 약물을 실험 대상자에게 투여해 기존 약과 생체 반응이 같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는 실험을 말한다.
2~3차례 생동성 실험에 자원한 수도권소재 K대학 재학생 고모(29·남)씨는 "알러지 약을 복용하고 정해진 시간마다 피를 뽑았다"며 "2박3일 동안 합숙하면서 수십 차례 피를 뽑고 받은 돈은 43만 원가량"이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위험해 보이는 실험일수록 참가하고 받는 돈도 많아진다"며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박은희 기자 lomoreal@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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