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 이광호 기자, 이지은 기자]12개 저축은행이 집단적으로 금융감독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전수조사 결과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국의 하반기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8월 위기' 불씨를 차단하려는 금융당국이 부실채권 매입 규모를 최대치로 정했지만 업계에서는 심사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했다는 이유를 들어 PF를 헐값에 넘길 수 없다며 맞서고 나선 것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부실채권 매입에도 불구하고 '9월 경영진단' 카드를 꺼낸 것은 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통상 정기평가 수준을 넘어선 '고강도 조사'가 될 수 있다며 긴장하고 있다.
◆금감원 전수조사 잡음 왜=금감원의 저축은행 PF사업장 전수조사 방침이 나오자마자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당국의 조사 기간은 영업일 기준으로 10일 밖에 안돼 468개 사업장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데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달 말까지 캠코의 부실채권 매입을 완료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현장조사에 나섰던 금감원 한 조사역은 "PF사업장 조사팀은 2인 1조로 총 21팀 구성됐으며 현장조사 대상 173곳을 하루에 한개 꼴로 심사해야했다"며 "서류심사 대상 295곳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발견되면 현장으로 직접 나가 진상을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기한 내(10영업일) 모든 사업장을 살펴보는데 빠듯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6월 결산법인인 저축은행의 제무재표상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는 '세탁 작업' 차원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영업중인 98개 저축은행의 2010년 회계연도(2010년 6월~2011년 6월) 결산 결과가 발표되는 8월에 부실은행들이 줄줄이 퇴출되면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당국을 짓눌러 정책 무리수가 나왔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전수조사 진행기간 동안 "정상 이하 채권 5조~6조 어치를 다 사들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가 회생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사업장도 '부실 또는 부실우려'로 둔갑했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저축銀, 9월 경영진단 수위 노심초사=업계는 부실 PF 채권 매각 프로세스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기존 정상ㆍ보통ㆍ악화우려의 3단계였던 등급을 4단계인 정상ㆍ보통ㆍ부실 우려ㆍ부실로 분류한 다음 보통 수준의 PF사업장을 억지로 '부실 우려' 등급으로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말이 세분화지 하향조정을 위한 장치였다는 노골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모 저축은행 고위관계자는 "충분히 회생 가능한 사업장도 금융당국에 의해 부실 우려 사업장으로 둔갑됐다"며 "이미 1, 2, 3차에 걸쳐 부실 PF 채권을 매각했고 충당금도 충분히 쌓아 걱정없다. 헐값에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9월 정기 경영평가 수위에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불씨를 없애려는 금융당국의 계획이 차질을 빚어 6월 결산 결과가 나오는 저축은행의 8∼9월 정기 경영평가 수위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매년 결산이 끝나는 시점에 받아온 경영평가지만 이번에는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에 대해 벼르고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더 철저하게 결산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저축은행은 재예치율이 20% 가량 떨어지는 등 아직도 예금이 빠지고 있어 휴업상태나 다름 없다"며 "저축은행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진 기자 tjjo@
이광호 기자 kwang@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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