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신한은행의 한 지점에서 일하는 A씨는 요즘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실적 부담 탓이다. A씨가 속한 지점의 영업실적은 은행 내에서 수위를 다퉈 2위로 떨어지면 안된다는 압박감이 심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은행권에서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신한금융이 경쟁사인 국민은행 점포에서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신한금융 계열인 신한생명은 최근 국민은행 지점에 설치된 자동화기기(ATMㆍCD) 옆에 무료 영화관람권을 쌓아놓고 판촉활동을 벌였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고객들을 초청해 무료로 영화를 보여준 뒤 재테크설명회를 열어 상품을 설명하는 전략이다. 경쟁 은행의 고객을 뺏기 위한 노골적인 판촉인데 은행원들은 "사랑과 영업에는 국경이 없다"는 통설이 은행권에 확산된 지 이미 오래라고 자조하고 있다. 더 재밌는 건 인근 신한은행 자동화코너에는 문제의 무료 관람권이 비치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한과 KB는 최근 대출과 예금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고객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잠재고객을 겨냥한 대학가의 판촉은 총과 칼만 없을 뿐 살기가 등등하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유명을 달리하거나 병마에 시달리는 은행원도 상당하다. 물론 모든 것을 업무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기업은행의 경우 최근 2년간 11명의 직원이 생을 등졌고 22명이 투병 중이라고 한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다 보면 더 크고 중요한 것을 잃기 마련이다. 지난해 말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무엇보다 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데 앞장서겠다. 은행 간 경쟁은 단기간의 승부가 아닌 장기전이다. '1등ㆍ100년 은행'으로 나아가려면 전 직원이 우리 조직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도록 '삶의 질'부터 높여가야 한다." 다른 시중은행장들은 조 행장의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박민규 기자 yu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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