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흔히 상사의 부류를 4가지로 나눈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 '똑게(똑똑하고 게으른 상사)'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 '멍게(멍청하고 게으른 상사)'.
아랫사람이 꼽는 이상적인 상사는 '똑게' '똑부' '멍게' '멍부'순. 조직으로선 '똑부'가 으뜸이겠지만, 부하 직원에겐 피곤한 부류다. 부하들에겐 업무를 한 눈에 파악하고 있어도 작은 일은 간섭하지 않는 '똑게'가 '똑부'보다 인기다.
2일 오후 취임하는 박재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중 가장 모시기 어려운 '똑부'류 상사다. 소문난 학구파, 일벌레답게 일화도 많다. 의원 시절엔 간이침대를 놔두고 보좌관보다 늦게 퇴근했고, 청와대 시절엔 경호처 숙직실에 남아 행정관보다 독하게 일했다.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사업 같은 이 정부의 핵심 과제는 대부분 '메이드 바이(made by) 박재완'표다.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에도 화제를 뿌렸다. 타부처 장관들에게 '스터디'를 권해서다. 박 장관은 지난해 10월 28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좋은 경제 이론이 있어 공유하고 싶다"며 정부의 경제 정책과 실업의 관계를 다룬 피터 다이아몬드, 데일 모텐슨, 크리스토퍼 피서라이즈의 이론을 소개했다. 대학 시절처럼 페이퍼도 돌렸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박 장관을 맞는 재정부 직원들은 긴장모드다. 5·6 개각 이후 한 달여. 새 장관 취임 전까지 짧은 봄방학을 즐긴 재정부는 '똑부' 실세 장관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가장 큰 변화는 학습량이 늘었다는 것. 박 장관이 경제 정책의 새 기준으로 '콜렛-헤이그 규칙(Corllet & Hague Rule·최적소비과세이론)'과 '하이로드 접근법(High road·적발과 처벌보다 자율에 맡기는 규제 방식)' 등을 언급한 뒤 먼지 쌓인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꺼내든 이들이 많다.
재정부 관계자는 "부처 내에 경제학과 출신이 많지만, 박 장관이 언급한 이론들은 사실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어서 다들 참고문헌 목록을 업데이트하고 숙제하듯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전임 윤증현 장관에게 익숙한 이들은 "보고서 작성부터 긴장된다"고 했다. 정책의 큰 방향만 제시하고 실무는 일임하던 윤 장관과 달리 박 장관의 별명은 '숲보다 나무'. 박 장관은 보고서나 기사에서 잘못된 부호나 오탈자, 사소한 뉘앙스 차이도 봐 넘기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내정 이후 언론 보도를 두고 재정부가 쏟아낸 보도해명자료에는 깨알같은 지적이 가득하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박 장관 취임 이후 조직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본다"며 "정권은 임기말이지만 재정부 시계는 거꾸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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