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있는 사람에게 그룹 넘기겠다" 후계구도 재확인
전문적 지식 갖춘 임원진 대거 활약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저도 언젠가 톱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STX그룹 공채로 입사한 한 직원은 최근 기자에게 "회장이 되고 싶다"며 이같은 속내를 밝힌 바 있다.
삼성과 두산 등 대기업들중 전문경영인이 회장 또는 부회장에 오른 적은 있다. 하지만 이들 전문경영인들은 오너 경영의 단기간 경영공백을 메워주는 차원에 불과했다.그런데,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말단 직원도 그룹의 최고직인 회장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업 문화로 심고 있다.
지난달 29일 중국 다롄 창싱다오 'STX다롄 조선해양 종합생산기지'에서 열린 그룹 출범 10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1세대가 창업을 해 자식에게 겨주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몇백년 가는 기업을 한 사람이 지배하는 경우는 없다. (회장이 누가 되느냐는)시장의 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능력있는 인물이라면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는 견해를 재확인 한 것이다.
강 회장의 1남 2녀 자녀들은 아직 그룹에 입사하지 않고 있으며, 두 딸이 STX건설 주식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1950년생인 강 회장이 당장 퇴진을 거론하기는 시기상조이며, 향후 자식들의 주식 소유 비중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강 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와 관련해 '소유'와 '분리'는 필연적이라고 보고 '포스트 강덕수'는 반드시 자기 자식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당연히 조심스럽게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에 눈이 쏠린다.
강 회장은 자신이 떠나도 STX그룹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평소 주변인들에게 "STX가 성공하는 데에는 인재들의 도움이 컸다.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인수한 기업 경영진들을 대거 등용하고, 이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능력을 키워 나가도록 하는 그의 인재 활용전략 덕분에 전문경영인들은 강 회장 만큼에 버금가는 그룹 경영 역량을 습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장급 이상 STX 경영진들은 출신 성분을 기준으로 크게 범양상선(현 STX팬오션)ㆍ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ㆍ쌍용(현 STX엔진)ㆍ영입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범양상선 출신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지주사인 STX(주) 대표이사인 이종철 부회장, 김대유 사업부문 총괄 사장, 추성엽 지주부문 총괄 사장, 홍경진 STX조선해양 부회장, 배선령 STX팬오션 사장, 유천일 STX메탈 부사장 등이 주인공이다. 강 회장은 범양상선을 인수할 때 회사보다 사람을 구한 게 더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범양상선의 맨 파워를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이에 보답하듯 이들은 그룹 성장에 기여하며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종철ㆍ홍경진 부회장은 강 회장을 잇는 '넘버2'로 불리는데 전자는 경영의 큰 그림을 보는 전략형, 후자는 세세한 사안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지는 관리형 CEO라는 점에서 대조를 보인다. 그룹에서는 두 사람중 한 명이 향후 미래에 그룹 회장으로 등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동조선 출신은 신상호 STX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과 김서주 STX유럽 사장이, 강 회장의 요람인 쌍용그룹 출신으로는 여혁종 STX에너지 대표이사 부회장(쌍용정유), 정동학 STX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쌍용중공업), 윤제현 STX솔라 대표이사 사장(쌍용)이 활약하고 있다.
이밖에 영입파들은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 후계구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공직에 몸담다가 합류한 이희범 STX에너지 회장ㆍ신철식 STX그룹 미래전략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STX에너지 사장은 그룹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있으며, 이인성 STX유럽 총괄 부회장(대우조선해양), 이찬우 STX중공업 대표이사 사장(포스코건설), 박임동 STX건설 대표이사 사장(신세계 건설) 등은 업계에서 이동한 경우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강 회장이 자식들에게 반드시 경영권을 물려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강 회장이 그리는 STX는 서구 기업처럼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100년, 200년을 이어가는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장단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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